까렌 민족해방투쟁을 이끌어온 주역들인 까렌민족연합 중앙상임위원들이 최초로 언론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앞줄 다섯번 째 끄웨뚜윈 부의장, 여섯번째 무뚜 세이뿌 의장, 일곱번째 까렌민족해방군 사령관 조니 장군
“까렌(Karen)은 영국 식민 시절 붙여진 이름이고, 예부터 우린 ‘쁘와 깐요’(Pwar Kanyaw)라 불렀어. 깐요 사람이란 뜻이지.”
까렌 역사가인 타마인뚠(80)은 대물림해온 ‘모래가 흐르는 강’ 전설을 풀어낸다. “우리 고향이 고비사막이야. 그 뒤 양쯔강 따라 티벳 거쳐 중국 윈난으로 내려왔고. 기원전 1150년 여기 버마 남동부로 넘어왔대.” 스스로 몽골리안이라 믿는 깐요는 현재 버마에 500만~700만, 타이에 100만 그리고 유럽과 아시아에 150만이 살고 있다.
까렌이 현대사에 등장한 건 19세기 버마를 삼킨 영국이 소수민족을 무장시켜 다수 버마인을 지배한 이른바 분할통치를 통해서다. 이어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영국은 전후 독립 보장을 미끼로 까렌을 비롯한 소수민족을 끌어들여 일본군에 맞섰다. 그러나 종전 뒤 1948년 버마 독립과 함께 영국은 사라졌고 까렌과 소수민족들은 버마 정부에 맞서 독립·해방투쟁 깃발을 올렸다. 오늘 버마 전역을 뒤덮은 민족분쟁은 식민주의의 유산이었다.
까렌 해방을 외치며 1947년 창설한 까렌민족연합은 그동안 소수민족해방·민주혁명전선의 줏대 노릇을 하며 세계 최장기 무장투쟁 기록을 이어왔다. 까렌민족연합의 무장조직인 까렌민족해방군은 한때 2만 병력을 거느렸으나 꼬리 문 조직 분화를 거쳐 현재 조니 장군이 이끄는 7개 여단 8천 병력이 전선을 가고 있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