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국제항공사 소속 보잉 737-800 여객기가 지난 8일(현지시각)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이맘호메이니 공항을 이륙한 직후 추락한 뒤, 구조팀이 사고 현장을 돌아보고 있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이 여객기가 이란의 미사일을 맞아 격추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테헤란/IRNA AFP 연합뉴스
미국과 캐나다, 영국 등 서방 국가들이 최근 이란의 수도 테헤란 외곽에서 추락한 우크라이나 여객기가 이란의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됐다는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고의적 의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는 전제를 깔았지만 ‘기계적 결함’에 의한 추락이라는 이란 쪽 발표를 정면 반박한 것이다. 이란은 이를 두고 “이란에 대한 심리전“이라고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이란은 사고 당시 상황이 담긴 ‘블랙박스’를 내줄 수는 없다면서도, 사고 조사에 피해 당사국은 물론 미국까지 참여시키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9일(현지시각) 수도 오타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 정보 당국과 동맹국 정보 당국로부터 확보한 복수의 정보를 통해 확인한 결과, (우크라이나국제항공사 소속 보잉 737-800 여객기가) 이란의 지대공 미사일에 맞아 추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캐나다는 이번 사고로 국민 63명을 잃어, 이번 사고(176명 전원 사망) 최대 피해 국가다. 그는 다만 “(사고가) 의도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스콧 모리슨 오스트레일리아 총리도 비슷한 입장을 발표했는데, 모리슨 총리도 “제시된 모든 정보들을 볼 때, 고의적 행동이라고 보이진 않는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의심가는 부분이 있다”며 “(추락 항공기가) 험악한 상황에서 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 실수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이라고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거셈 솔레이마니 ‘쿠드스’(이란혁명수비대 정예군) 사령관 암살 이후, 미국과 이란 간 군사적 긴장이 높아진 상황에서, 이란이 우크라이나 여객기의 움직임을 미군의 공격으로 오인했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미국 <시엔엔>(CNN) 방송을 비롯한 외신들은 이와 관련 미 정부 고위 관계자 등의 말을 인용해 우크라이나 여객기가 이란의 러시아제 지대공 미사일 ‘SA-15’ 2발에 의해 격추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은 단거리 미사일을 추적하는 ‘우주 적외선 시스템’ 정보 등 광범위한 위성 정보를 분석한 결과, 우크라이나 여객기가 테헤란에서 이륙한 지 2분 뒤 지대공 미사일의 열 신호를 감지했고 이후 여객기 근처에서 폭발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피격 당시 영상을 공개하는 한편, 이후 미 정보 기관들이 우크라이나 여객기가 격추됐음을 확인하는 교신을 포착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알리 라비에이 이란 정부 대변인은 서방 국가들이 제기하는 이같은 ‘미사일 격추설’에 대해 “이란에 대한 심리전”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부인했다. ‘미사일 공격으로 격추된 것이라면 여객기가 바로 폭발했어야 하는데, 여객기가 회항 도중 추락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다만 그는 사고 원인 조사에 피해 당사국은 물론, 여객기 제작사인 보잉사와 함께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도 동참해줄 것을 촉구했다.
캐나다 교통안전위원회는 물론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 등은 이 제안을 수락해 조사관을 파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