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예멘 수도 사나의 한 거리에서 미군의 무인기가 그려진 벽화 옆을 한 남성이 지나가고 있다. 이날 미군은 예멘 남부 알바이다 지역에서 도널드 트럼프 정부 들어 첫 군사공격을 벌여 30명 안팎의 민간인 사망자를 냈다. 사나/신화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출범한 지 열흘만에 벌인 첫 해외 군사작전에서 민간인 30여명이 숨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군은 30일 내전이 진행중인 예멘 남부 알바이다 지역에서 이슬람급진주의 세력을 공격했으며, 이 과정에서 여성과 어린이 10명을 포함해 약 30명의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영국 <인디펜던트>가 현지 의료진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특히 숨진 어린이 중에는 2011년 미군 공습으로 폭사한 알카에다 연계세력 지도자이자 이슬람 성직자인 안와르 아울라키의 8살짜리 딸 노라도 포함됐다고 신문은 전했다.
노라의 할아버지 나세르는 “노라가 목 부위에 총알을 맞아 2시간 동안이나 고통 받다가 숨졌다”며 “왜 아이들을 죽이는가? 이게 바로 미국의 새 정부다. 너무 슬프다. 이건 엄청난 범죄다”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주민은 “이날 새벽 무인기 한 대가 한 주택을 폭격하면서 공습이 시작됐으며, 곧이어 헬기들이 날아와 군인들을 낙하시킨 뒤 (그들이) 민가를 덮쳐 집안에 있던 모든 사람을 사살했다”고 주장했다.그는 또 “그 주변 지역에 있던 무장세력이 미군을 향해 응사하자 미군 헬기들이 그들과 여러 채의 집들에 폭탄을 퍼부으면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미 국방부는 이날 알카에다 전투원 14명을 사살했으며 예멘 중부에서도 두 차례 무인기 공습을 벌였다고 확인했으나, 민간인 살상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미군 당국은 이날 교전에서 미군 지휘관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성명에서 “이슬람 급진주의 테러리즘이라는 악에 맞서 싸우던 미군 지휘관의 전사 소식을 듣고 매우 슬펐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예멘 수도 사나의 한 장례식장이 사우디아라비 주도 아랍 동맹군 소속으로 추정되는 전폭기의 공습을 받은 뒤 처참하게 파괴돼 있다. 이 공습으로 민간인을 포함해 최소 140명이 숨졌다. 사나/AP 연합뉴스
트럼프 정부의 전임인 버락 오바마 정부도 예멘 등 중동 분쟁지역에서 주로 드론을 이용해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을 벌여왔다. 지난 16일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 예멘 주재 담당관은 2년 가까운 예멘 내전에서 숨진 민간인 수가 1월 중순 현재 1만명을 넘어섰으며 부상자는 4만명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다. 예멘 내전은 이슬람 수니파인 정권 대 시아파 반군의 대결 구도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를 비롯한 수니파 국가들과 시아파 맹주인 이란, 나아가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미국 등 서방까지 개입하면서 국제 대리전 양상으로 번졌다. 평화협상 조건과 권력분점을 둘러싸고 양쪽이 팽팽히 맞서면서 좀체 해결의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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