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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밖은 ‘핵 개발 후폭풍’ 예보 안으로는 ‘변화 갈망’ 바람

등록 2008-07-06 21:45

중동 최대의 재래시장인 테헤란 바자르 안에 있는 이맘 호메이니 모스크에서 광장 건너편으로 황금돔 사원을 내다본 풍경. 신앙과 정치와 생활이 하나인 이란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명소다.
중동 최대의 재래시장인 테헤란 바자르 안에 있는 이맘 호메이니 모스크에서 광장 건너편으로 황금돔 사원을 내다본 풍경. 신앙과 정치와 생활이 하나인 이란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명소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은 1200만 인구의 대도시답게 자동차와 인파로 붐빈다. 큰 건물들 외벽에는 준수한 외모의 남자들의 얼굴을 그린 벽화들이 곧잘 눈에 띈다. 1979년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슬람 혁명 직후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라크와의 전쟁 때 목숨을 잃은 ‘영웅’들이다. 최근 이란에서도 언론의 최대 뉴스는 자국의 핵 개발을 둘러싼 이스라엘과 미국의 압박, 그리고 이에 대한 단호한 대응 의지다.

그러나 정작 테헤란 시내를 활보하는 시민들의 겉표정에선 그런 긴장감을 찾아보기 힘들다. 시내 중심에 있는 엥겔랍 호텔(엥겔랍은 ‘혁명’이란 뜻이다)의 입구에는 히잡 착용을 요구하는 정중한 안내문이 눈길을 끈다. “손님 여러분, 히잡은 이란 무슬림 여성들의 문화의 품격 있는 반영입니다. 우리 고유의 이슬람 문명과 문화를 존중해주시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많은 젊은 여성들은 히잡을 패션 소품으로 활용하고 반쯤 드러낸 앞머리에 노랑·연두·보라색 물을 들여 멋을 부린다. 이란 여성들은 집에서는 히잡과 차도르를 벗고 편한 옷차림으로 지낸다. 가까운 이들끼리의 실내 파티에서는 슬립에 가까운 파격적인 원피스를 입고 춤도 춘다. 중동 최대의 재래시장인 테헤란 바자르는 필요한 물건을 사려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테헤란에서 남쪽으로 400㎞ 떨어진 고도 이스파한. 나즈막한 산 꼭대기의 조로아스터교 제단, 아르메니안 교회, 흔들리는 미나렛(종탑) 등 문화유적지가 풍부한 곳이다. 잔디와 나무가 잘 가꿔진 소페산 공원에는 휴일을 즐기는 가족 단위의 행락객들로 붐볐고, 저녁에는 저얀데루드(‘생명의 근원’이라는 뜻) 강변에서 은은한 조명으로 고색적 풍취를 자아내는 인도교들 주변으로 시민들이 몰려나와 더위를 식혔다.

2008년 7월, 이란은 전통과 현대, 자부심과 자괴감, 평온과 긴장이 뒤섞인 채 뒤숭숭한 여름을 맞고 있었다. 아직도 1979년 이슬람 혁명의 경계에 놓여있는 듯 했다. 격동의 근대사를 관통해온 기성세대가 이란 사회를 지배하고 있지만, 이슬람 혁명이후 세대인 20~30대 젊은 세대가 이란 인구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화려한 아라비크 문양의 돔과 아치형 입구가 자태를 뽐내는 모스크들 주변으로는, 수입 브랜드 화장품과 패션의류를 파는 상가들이 줄지었다. 시아파 신학의 본산지인 콤에 있는 호메이니의 생가는 덩그라니 서있는 안내표지판이 전부여서 소박하다 못해 초라하다. 호메이니의 생전 삶이 그렇게 검소했다고 한다.

이맘 호메이니 모스크 광장
이맘 호메이니 모스크 광장
이란인들은 자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이며, 모든 국립대의 학비는 무료여서 교육수준도 높은 편이다. 파르시어로 이란은 ‘고귀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전기 엔지니어인 마무드 하산(가명)은 미국에서만 온 가족이 10년 이상 거주하는 등 ‘서구 물’을 많이 먹었지만 최근 영주귀국하기로 결심했다. “미국에서도 이웃들과 서로 도우며 친하게 잘 지냈어요. 그런데 평범한 이웃들조차 내가 이란 출신임을 알게 되는 순간 ‘오, 마이 갓!’ 하며 놀라거나 어색한 표정을 보입니다. 뭐가 문제지요?”라고 되물었다.

그러나 하루하루의 삶이 고단한 서민들에게는 자부심보다 빵과 기름이 더 절실하다. 이란은 20년이 넘게 경제제재를 받고 있지만, 아직까지 국민에게 최소한의 의식주는 보장하고 있다. 이란은 밀과 쌀, 야채와 과일 등 기본적인 먹거리 자급자족이 가능한 나라다. 약 300원(3000리얄)이면 4인 가족이 하루 먹을만큼의 빵을 살 수 있다. 휘발유도 1ℓ에 1000리얄(100원)로 엄청 싼 편이다. 이것도 최근 몇달새 20%나 오른 가격이어서 서민들이 힘들어한다고 한다.  그러나 물가 급등과 화폐가치 폭락으로 서민 경제에는 깊은 시름이 드리웠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전만 해도 1달러에 500리얄이었으나, 1990년대 들어 1달러에 1200리얄, 지금은 약 9000리얄로 뛰었다. 세계 4위의 산유국임에도 정유시설이 부족해, 지난해 9월부터 휘발유 사용량을 제한하는 배급제를 시행 중이다. 경제 침체로 실업률이 40%에 이른다. 정부는 빵과 기름값에 지급하는 엄청난 액수의 보조금도 부담스럽다.

테헤란의 신흥 번화가인 북부 타즈리시. 밤 9시가 채 안됐는데도 대다수 상가는 문을 닫았고 가로등도 불이 켜진 게 거의 없이, 거리에는 꼬리를 문 자동차 불빛만 흐르고 있었다. 현지 교민 최 아무개씨는 “한때 이란은 인접국에 전기를 수출했지만, 지금은 테헤란에서도 일주일에 3~4차례 정전되는 지역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력생산을 위해 핵발전이 필요하다는 데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으며, 상당수는 미국이 이란의 핵프로그램을 핵무기 제조용이란 구실로 압박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정일치 국가의 답답함에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도 갈수록 늘고 있다. 이란 정부는 급격한 서구문물의 유입을 경계해 인터넷 속도를 제한하고 있다. 출판물의 사전 검열도 심각한 수준이다. 아주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올 초 테헤란에선 도덕적인 중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피고를 공개 교수형에 처한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한 테헤란 시민은 “정치권력화한 ‘땡초’ 신학자들과 지배계급이 ‘이념’에 집착하면서 국제관계를 꼬이게 하고 경제정책에 실패해 국민들을 힘들게 만들었다. 그들이 하는 게 뭐가 있느냐”고 꼬집었다.


이란은 지금 중대한 시험대에 놓여 있다. 밖에서 ‘핵 폭풍’ 예보가 몰아치는 이란의 안에서도 변화를 갈망하는 바람은 거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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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테헤란/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취재지원=한국언론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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