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19일 열린 이라크전 3주년 행사에서 버몬트주 글로버에서 온 인형극단원들이 이라크전 사상자를 상징하는 탈을 쓰고 행진하고 있다. 이날 미국 전역에서는 종전과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반전행사가 잇따랐다. 포틀랜드/AFP 연합
‘타임’ 보도 “작년 11월 해병대원 폭사에 15명 살해”
대부분 근거리 피격…‘미, 교전중 오인’ 주장 뒤집어
대부분 근거리 피격…‘미, 교전중 오인’ 주장 뒤집어
“미군은 먼저 방에서 기도하던 아버지를 총으로 쏴 죽였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차례로 쏴 죽였다. 나와 내 동생을 몸으로 보호하던 다른 어른들도 모두 다 그렇게 죽었다. 나중에 이라크 병사들이 들어왔다. ‘왜 우리 가족에게 이런 짓을 하느냐’고 소리치자, 그들은 ‘우리가 아니다. 미군들이 그랬다’고 말했다.”
이라크 서부 하디타에 사는 소녀 이만 왈리드(9)의 증언이다. 시사주간 <타임>은 20일 최신호에서, 지난해 11월 하디타에서 벌어진 민간인 15명 사살 사건을 다뤘다. <타임>은 “(해병대원 폭사에 대응한) 미군의 의도적 보복사살 의혹이 있다”며 “사실로 드러나면 이라크 개전 이후 최악의 민간인 학살사건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사건이 일어난 건 지난해 11월19일 아침. 하디타 거리에서 강력한 폭발물이 터지면서 험비차에 타고 있던 해병대원 미겔 티라자스(20) 상병이 숨졌다. 곧 동료 해병대원들이 인근 집들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미군들은 “인근 집에서 총탄이 날아왔다”고 주장했다.
첫번째가 이만 왈리드의 집이었다. 폭발음에 놀라 잠에서 깨어난 왈리드 가족들은 잠옷을 입은 채 방에 모여 있다가 미군 습격을 받았다고 왈리드가 말했다. 이 집에서만 왈리드의 부모를 포함해 7명이 숨졌다. 미군들은 다음 집에 수류탄을 던져넣었다. 이어 집안에 총을 난사했고, 어린이 4명을 포함해 8명이 숨졌다.
미군들은 다른 집에서 형제 4명을 더 사살했다. <타임>은 “형제 4명 중 한 명이 아카보(AK-47) 소총을 갖고 있었다고 미군이 밝혔다. 이들을 빼더라도, 먼저 숨진 15명이 비무장 민간인이었다는 건 미군도 인정했다”고 전했다.
해군범죄조사단은 공식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라크 주둔 미군 대변인은 “민간인 사망의 책임은 (미군뿐 아니라) 반군에도 똑같이 있다. 이들은 민간인들을 (방패막이로) 사선에 두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타임>은 미군 주장엔 의혹이 많다고 전했다. 부검의사는 “대부분의 사망자가 가까운 거리에서 가슴과 머리에 정확하게 총탄을 맞았다”고 말했다. 사건 다음날 참사현장을 찍은 비디오를 보면, 가옥 내부엔 총탄 자국이 선명하지만 외부엔 총탄 흔적이 없다. 반군과의 격렬한 교전을 오인사살 이유로 든 미군 주장을 뒤엎는 내용이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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