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거래위원장으로 임명된 리나 칸 컬럼비아대 법학 교수. 지난 4월21일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연방거래위원장에 아마존 등 거대 첨단기술 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가장 강력히 주장해온 학자가 임명됐다.
리나 칸(32) 컬럼비아대 법학대학원 교수가 15일 연방거래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했다. 앞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뒤 칸을 연방거래위원으로 지명했고, 이날 상원에서 위원으로 인준됨과 동시에 바이든 대통령이 위원장으로 임명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전했다.
연방거래위는 기업의 독점 및 불공정을 규제하는 등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업무로 한다. 칸의 연방거래위원장 임명은 거대 첨단기술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에 대한 규제를 본격적으로 강화하려는 미 정부와 의회 안팎의 흐름을 더욱 재촉할 전망이다.
앞서 하원은 지난 11일 아마존·애플·구글·페이스북 4대 첨단기술 기업을 겨냥한 4개의 반독점법을 발의했다. 이 법들이 발효되면 아마존이 분할될 수 있는 등 4대 기업이 강력한 규제를 받게 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최근 저명 실리콘밸리 비판자인 팀 우 컬럼비아대 교수를 백악관 경쟁정책 특보로 임명했다.
칸은 아마존·구글·페이스북 등 미국의 거대 첨단기술 기업이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기 때문에 정부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이자 활동가다. 그는 2017년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이라는 논문에서 아마존이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가격을 올리기보다는 가격을 낮춰 소비자를 독점하는 새로운 행태를 보인다며, 플랫폼 경제에서 ‘독점의 정의’를 새로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낮은 가격이 소비자에게 좋다는 반독점에 대한 지배적인 사고는 낡은 것이고, 현대 경제에서 상충하는 힘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칸이 예일대 법학대학원에 다닐 때 쓴 이 논문은 플랫폼 경제의 독점기업 정의와 그 문제들을 논의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 그 후 칸은 시장 경쟁과 독점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아마존 등 거대 첨단기술 기업에 대한 강력한 비판자로 떠올랐다. 하원 법사위의 반독점 패널로 4대 기업의 시장 지배력 남용에 대한 방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지난해 발표된 449쪽짜리 이 보고서는 4대 기업이 새로 출현하는 도전자들을 인수·합병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입법을 촉구했다.
전 연방거래위원장이었던 윌리엄 코바식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5년 전 그 회사들은 그(칸)가 누구인지도 몰랐다”며 “아웃사이더 활동가가 갑자기 연방거래위원장이 된 것”이라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는 “그들 중 누구도 이런 일이 생길 것으로 보지 못했다”며 “그들의 삶이 더 어려워지고, 더 위태롭게 됐다”고 거대 첨단기술 기업들이 큰 시련을 맞게 됐다고 예상했다.
소비자 단체인 ‘퍼블릭 시티즌’은 칸의 임명이 “폭주하는 기업의 힘”에 대처하는 조처라고 환영했다. 아마존 등 거대 첨단기업들의 분할을 주장해온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트위터에서 “칸 위원장이 키를 쥐게 됨으로써, 우리는 반독점 집행력을 높이고, 우리 경제와 사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독점과 싸울 수 있는 거대하고 구조적인 변화의 기회를 갖게 됐다”고 환영했다.
아마존 등 4대 기업은 칸의 임명에 대해 논평하지 않았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하지만 이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은 “반독점에 대한 포퓰리스트적인 접근은 실력이 모자란 외국 경쟁자들을 이롭게 하는 지속적인 자해적 손상을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