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50일 이상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27일 연방법원 청사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파견한 연방 치안병력에 진압당한 한 시민이 피를 흘리면 연행되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에서 경찰에 목이 눌려 숨진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가 지난 주말을 계기로 다시 고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플로이드 사망 이후 50일 이상 도심 시위가 계속된 미국 서북부 오리건의 포틀랜드 등에 연방 치안력을 투입해 격렬한 충돌이 벌어지자, 시애틀 등 다른 지역에서 이에 항의하는 동조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더 많은 연방요원들을 파견해 시위대를 더욱 거세게 압박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2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미국 연방보안관이 지난주 100명의 부보안관들을 파견키로 결정했고, 국토안보부도 50명의 국경수비대 요원을 추가로 파견할 계획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7월 중순에 포틀랜드의 법원 등 연방기관 보호를 위해 114명의 연방 요원을 파견했으나, 현재 포틀랜드에 파견된 정확한 연방 치안력 규모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달 초 전국을 휩쓰는 항의 시위에 대처하기 위해 연방군을 투입하려다가,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을 비롯한 군부의 격렬한 반대로 뜻을 접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달 초 연방 요원 투입을 결정했다. 트럼프는 지난 23일 <폭스뉴스> 회견에서 포틀랜드 등 시위가 계속되는 도시에 7만5천명의 연방 요원들을 파견할 준비가 됐다고 밝힌바 있다. 그는 “도심을 휩쓰는 폭력과 무정부의 만연을 막기 위해 우리는 그 도시에, 어떤 도시에도 들어갈 것이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연방 요원을 투입한 도시들은 대부분 민주당 시장 정부가 있는 곳이다. 포틀랜드 등 민주당 시 정부는 트럼프의 연방 요원 투입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포틀랜드에서 연방 요원들과 시위대가 격렬히 충돌하자, 시애틀 등 다른 도시에서도 이에 대한 항의 시위가 번지고 있다. 시애틀에서는 지난 26일 시위대가 돌과 폭발물을 경찰서에 투척했다. 수십명이 체포됐고, 59명의 경찰이 부상을 입었다. 텍사스 오스틴에서도 시위가 벌어져, 주 청사 근처에서 시위 참가자 1명이 총에 맞기도 했다.
이번 사태의 중심지인 포틀랜드에서는 시위대가 50일 이상이나 도심을 행진하고 있고, 일부 과격파 시위대는 도심 일부를 점거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가 연방 요원을 투입해 보호하겠다는 연방법원 청사 밖에 수천명이 집결해, 연방 요원들과 대치하며 충돌하고 있다. 이들은 연방 요원이 살포하는 최루가스 때문에 가스 마스크를 착용하고 방패나 하키스틱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포틀랜드에서는 무슨 일이?
미국 서북부 태평양 연안 오리건주의 최대 도시인 포틀랜드에서는 조지 플로이드 사망 이후 다른 도시에서처럼 평화적 항의시위가 벌어졌다. 미국 내 대부분의 도시에선 항의 시위가 6월 중순 이후 잦아들었으나, 포틀랜드에서는 이 시위가 계속되면서 일부 과격파 시위대가 경찰의 진압에 항의하며 폭력, 방화, 공공건물 파괴를 벌였다. 이에 트럼프가 연방 요원을 투입했지만, 주 정부와 시 정부는 이에 반대하며 연방정부를 상대로 자치권을 침해했다고 소송을 냈다. 포틀랜드의 시위는 연방 요원 투입을 계기로 더욱 격렬해졌다. 연방 요원들이 소속 기관을 밝히지 않은 채 차량을 동원해 강제로 시위대를 체포하고 구금했다. 이들은 또 최루가스와 고무탄을 시위대에 발사했다.
채드 울프 국토안보부 장관대행은 포틀랜드 시위대를 “폭력배” “무정부주의자”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시 정부 관리들은 평화적 시위대와 소수의 말썽꾼 시위대를 구분해야 한다며, 연방 요원 투입이 오히려 말썽꾼 시위대에게 명분을 주고 시위 전체를 과격화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포틀랜드에 투입된 연방 요원은 누구?
포틀랜드에 투입된 연방 요원들은 어느 연방 기관에 소속된 것인지를 알 수 없도록 위장 전투복을 입고 무차별적으로 시위대를 연행했다. 그들이 시위대를 연행할 때 사용한 차량에는 소속명이 적혀 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이들을 “정체불명의 돌격대원” “비밀 연방요원”이라고 불렀다.
연방 요원들은 지난달 트럼프가 역사적 기념물이나 동상, 연방기관 청사 등에 대한 보호를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새롭게 구성된 인력들이다. 이 요원들은 세관국경보호국(CBP), 연방보안관 등의 인력으로 구성됐다. 이들 중엔 특수전 훈련을 받은 관세국경보호청의 국경순찰전술부대(BORTAC·보탁)도 포함돼 있다. 포틀랜드에 파견된 연방 요원들이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고도로 훈련된 특수병력이라는 의미이다.
연방보안관의 특수작전대는 자신들은 고위험의 민감한 법집행, 국가비상사태, 민간폭동, 자연재해 때 파견된다고 밝혔다. 세관국경보호국 쪽은 포틀랜드에서 자신들이 체포한 사람들은 연방재산을 파괴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포틀랜드 시 정부 및 시민 반응은?
오리건 주 정부와 포틀랜드 시 정부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 소속 테드 휠러 포틀랜드 시장은 수백명의 연방 요원들이 상황을 급격히 악화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그동안 시위를 진압하는 역할을 하다가, 이제는 연방 치안력 철수를 주장하는 시위를 이끌고 있다고 <시엔엔>(CNN) 방송은 전했다. 휠러 시장은 “그들의 존재가 더 많은 폭력과 공공기물 파괴를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
케이트 브라운 오리건 주지사는 트럼프가 연방 요원을 파견해 이 도시를 “정치적 무대”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오리건 주는 파견된 연방기관을 상대로 도시에서 철수하라는 소송를 제기했다. 미국시민자유연맹은 포틀랜드의 상황이 헌법적 위기로 치닫고 있다고 지적했다.
왜 포틀랜드에서 이런 일이?
포틀랜드가 있는 오리건주는 미국 내에서 진보와 극우 세력이 충돌하는 곳이다. 오리건 주지사와 포틀랜드 시장 모두 민주당 소속이고 전반적으로 환경운동 등 진보 성향이 가장 강한 곳이기는 하나, 이에 맞서 백인 민족주의 세력 등 극우세력들이 몰려들어 결집하는 곳이기도 하다. 최대 도시인 포틀랜드가 그 주요 무대다.
오리건주는 서부개척 시기, 그 주요 통로인 오리건 트레일의 종착점으로, 개척 당시에는 백인 정착자들에게만 땅이 할당됐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 주민 80%가 백인으로 미국 주 가운데 백인 주민 비율이 가장 높다. 애초 정착한 백인들 다수는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주민들로 진보 성향이 높기는 하나, 높은 백인 비율은 백인 극우주의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랜디 블라작 포틀랜드주립대 교수는 “오리건은 태평양 북서부에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딥 사우스’(전형적 남부 지역)의 특성을 지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곳에는 공산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 그리고 신나치주의자 및 파시스트들까지 있다”며 “오리건이 일부 극우 민병대와 반정부 단체의 고향”이라고 말했다.
포틀랜드는 1990년대 이후 자유주의자의 자유분방함과 창발성으로 생태환경주의를 기조로 하는 느린 도시로 정평이 났지만, 극우주의자들도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극우 단체들이 포틀랜드에 몰려들자, 도시에서는 반파시스트 운동이 벌어졌고, 이는 트럼프가 비난하는 ‘안티파’ 운동의 일환이 됐다. 특히 극우단체인 ‘프라우드 보이스’가 포틀랜드로 몰려들자, 지난해 8월 이를 반대하는 시위에 일어나면서 안티파와 극우들 간에 충돌이 벌어져 왔다.
프라우드 보이스는 포틀랜드의 좌파 단체들에 맞서기 위해 포틀랜드에 왔다고 주장한다. 엔리크 타리오 프라우드 보이스 의장은 “민주당 시장인 테드 휠러가 안티파에 영합하고 그들을 축출하지 않는 한, 우리는 그의 자원을 모두 소진시킬 것이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노동절(5월1일) 포틀랜드의 한 술집에서 프라우드 보이스 등 극우단체 소속 회원과 좌파 성향 시민들이 폭력적으로 충돌하면서 양쪽의 충돌이 본격화됐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포틀랜드에서 50일 이상이나 시위가 벌어지는 배경에는 이런 좌파와 극우 세력의 충돌이 있다. 극우 세력들의 준동에 진저리를 치는 시민들이 합세해, 인종차별 반대 및 극우 세력 추방을 내건 것이다. 안티파에 소속된 한 시위 참가자는 <시엔엔> 방송 인터뷰에서 “그들(극우단체)을 오게해서 시위를 벌이게 하는 것은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이라며 “그들은 모든 수단으로 폭력을 행사한다. 안티파에게 폭력을 행사하면, 이에 맞설 사람들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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