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나도 당했다.’
이 작은 외침이 메아리가 되자, 침묵이 깨졌고 세상은 움직였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6일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한 ‘침묵을 깬 사람들’을 2017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다고 밝혔다. 세계 곳곳의 언론들은 ‘#미투’(Me too·나도 당했다)를 올해의 사건으로 꼽았다.
80여개국으로 퍼져나간 ‘미투 운동’의 시작은 10월5일 <뉴욕 타임스> 보도였다. 신문은 이날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틴에게 수십년간 성적 학대를 당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배우 알리사 밀라노는 트위터에서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면 ‘#미투’라고 적은 글을 함께 올려보자고 제안했다. 숨어 있던 피해자들이 하나둘 용기를 내기 시작했고, 연대했다. 페이스북에만 하룻밤 사이 1200만건이 넘는 글이 올라왔다. 애슐리 저드를 시작으로 로즈 맥가원, 앤절리나 졸리, 귀네스 팰트로, 살마 하이에크 등 유명 배우들도 잇따라 행렬에 동참했다. 성별과 인종, 계층, 직종을 넘어 폭로가, 오열하듯 쏟아졌다. 이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더 이상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정계와 재계, 언론계와 문화계가 발칵 뒤집혔다. 와인스틴에 이어 유명 배우 케빈 스페이시와 더스틴 호프먼 등의 만행이 드러났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의 제임스 러바인 명예음악감독은 정직 처분을 받았다. 민주당 앨 프랭큰 상원의원, 공화당 트렌트 프랭크스 하원의원 등이 사퇴했다. 공화당 텃밭이던 앨라배마에서 미성년자 추행 의혹을 받던 로이 무어 후보는 패배했다. <시비에스>(CBS)의 진행자 찰리 로즈와 <엔비시>(NBC) 뉴스쇼 진행자 맷 라워는 해고당했다. 영국에선 마이클 팰런 국방장관이 사임했고, 데이미언 그린 부총리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변화는 시작됐다. 지난 16일 미국 엔터테인먼트업계에는 성희롱·직장 평등개선위원회가 발족됐고, 스웨덴 정부는 성폭력 기소 요건을 완화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표했다.
‘미투 운동’은 2007년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성폭력을 당한 젊은 여성들을 돕기 위해 만든 단체 ‘저스트 비’에서 처음 시작된 슬로건이다. 버크는 이제 ‘미투’를 넘어 ‘허투’(Her too)를 외쳐야 할 시간이 됐다고 주장한다. 버크와 밀라노는 21일 <가디언>에 “침묵을 깨기 두려워하는 셀 수 없는 여성들을 위해, 우리 모두가 대신 말할 힘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보코하람 무장세력에게 납치된 나이지리아 소녀들과 세계 곳곳에서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는 사람들, 컴퓨터 화면에 얼굴을 숨긴 누군가로부터 성희롱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해서 말이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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