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코미 전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입’이 8일 오전 10시(현지시각)에 드디어 열린다. 지난해 대선 기간 중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들과 러시아 정부의 유착 관계를 수사하다 전격 해임된 지 한달 만이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이나 사퇴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코미의 증언 수위에 따라선 트럼프 행정부가 사실상 ‘식물 정권’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는 코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지난달 9일 해임당한 뒤 처음으로 공개 석상에서 발언하게 된다.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과 주고받은 ‘러시아 게이트’ 수사 관련 대화 내용이 청문회의 초점이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적으로 치명상을 줄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첫째 쟁점은 코미가 회동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유착 의혹의 수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직접 밝혔는지 여부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미에게 해임 통지서를 보내면서 “내가 조사를 받고 있지 않다고 알려준 점을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며 미리 방어막을 쳤다.
하지만 코미는 트럼프 대통령한테 이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측근들을 통해 언론에 밝혀왔다. 오히려 그가 해임당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도 수사 대상에 포함되느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명확하게 ‘아니오’라고 답변하지 않아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러시아 게이트 수사의 총책임자였던 코미가 어떤 식으로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반박하면, 트럼프 대통령도 러시아 게이트 수사의 사정권 안에 있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모양새가 된다. 이미 미국 정보당국은 지난 1월 비밀 보고서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선거에 개입할 것을 지시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더욱 민감한 쟁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수사를 방해하려 했는지 여부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미를 만난 자리에서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러시아 유착 의혹 수사에 대해 “봐주라”고 얘기했다는 내용의 ‘코미 메모’가 언론에 유출됐다. 미국 대통령이 부정한 방식으로 사법기관의 조사를 방해했다면 탄핵 사유의 하나인 ‘사법방해’가 성립한다.
이와 관련해 <시엔엔>(CNN) 방송은 6일 “코미는 메모를 해야 할 만큼 불편했던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화를 묘사하는 방식으로 ‘사실 증언’만을 할 계획”이라며 “(사법방해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법률적 분석은 다른 사람에게 맡길 것”이라고 전했다. 사법방해를 입증하려면 코미의 증언 이외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에 대한 수사가 필요한데, 본인이 미리 결론을 내려 역풍을 맞기보다는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몫으로 남겨두겠다는 뜻이다.
코미가 전국에 생중계되는 대통령과의 대화 내용과 상황을 있는 그대로만 얘기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상당한 정치적 후폭풍에 직면할 수 있다. 이미 보도된 ‘코미 메모’만으로도 수사 중단 압력으로 느낄 만한 정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코미 해임 직후 <엔비시>(NBC) 방송 인터뷰에서 해임 결정을 내릴 때 러시아 게이트 수사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자인하기도 했다.
코미가 추가적으로 메모를 폭로할지도 관심거리다. 코미는 지난 2월 ‘부적절한’ 회동 뒤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이나 통화 내용을 모두 메모해놓았다고 한다.
워싱턴에선 코미의 증언을 ‘정치권의 슈퍼볼’(미식축구 챔피언 결정전)에 비유하고 있다. 코미의 증언 날짜를 빗대 ‘슈퍼 목요일’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시엔엔>을 포함해 <에이비시>(ABC) 등 지상파 3사가 일제히 생중계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 백악관에서 여야 상·하원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 코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행운을 빈다”며 짐짓 여유를 부렸다. 그러나 백악관 내부적으로는 초긴장 상태라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백악관과 트럼프 진영이 ‘코미는 정치적인 인물’이라며 흠집을 내는 전략을 세웠다고 전했다. 공화당 전국위원회도 코미에게 반격할 신속대응팀을 서둘러 꾸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미의 증언 당일 트위터로 즉각 대응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코미의 증언은 시작일 뿐이다. 코미는 트럼프와의 대화 내용만 증언한다. 러시아 유착 의혹 수사는 뮬러 특검이 진행하고 있다. 미국 특검 수사는 정해진 기한이 없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월 대니얼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에게 코미의 러시아 게이트 수사를 막아달라고 요청했다는 보도까지 추가로 나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의혹의 꼬리가 이어지고 있다.
올여름부터는 의원들이 의정설명회를 시작으로 내년 11월 중간선거 준비에 돌입한다. 민심의 향방에 따라 여당인 공화당원들이 등을 돌리면 탄핵론이 조기에 불거질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이나 자진 사퇴보다 더욱 최악의 상황은 지금처럼 국정 추진 동력을 잃고 4년 내내 표류하는 것이라고 워싱턴 정가에선 분석하고 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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