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4월 위기설’의 중심엔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호의 ‘거짓된’ 항로 변경이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칼빈슨호 항로를 갑작스레 변경한 것처럼 발표해 긴장을 고조시켰다. 의도했다면 동맹을 무력 충돌의 위기로 몰아넣은 것이고, 의도하지 않았다면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치명적인 소통 문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미 해군의 지난 8일 칼빈슨호 항로 변경 발표는 시점이 매우 좋지 않았다. 미군이 시리아의 공군기지를 크루즈 미사일로 공격한 다음날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에 이어 북한에 대해서도 ‘근육질’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에 불을 지폈다.
항로 변경 근거도 “이 지역 최고의 위협”, “무모하고 무책임한” 식으로 북한의 위협을 최대한 부각시켰다. 게다가 칼빈슨호가 오스트레일리아와의 예정된 연합훈련까지 취소한 것처럼 알려지면서 ‘공포감’은 더욱 확산됐다. 항모 행선지는 최소한 몇개월 전에 계획되고 조직된다. 이를 급하게 취소했다는 것은 심각한 북한의 위협이 임박했다는 뜻이며, 미국이 대북 군사공격도 감행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비쳤다.
이후 칼빈슨호의 항로 변경은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미국 고위 당국자들의 발언을 거치면서 과장되고 증폭됐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훈련을 취소했다는 식으로, 사실상 ‘거짓말’을 했다. 다음날인 12일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나서 “우리는 매우 강력한 무적함대를 (북한에) 보낼 것이다. 항공모함보다 더욱 강력한 잠수함들이 있다”며 위기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 최소한 트럼프 행정부 일부에선 이를 대북 심리전의 일환으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반도 긴장이 위험수위를 향해 치닫고 있었는데도 미 국방부가 열흘가량 행정부 고위당국자들의 ‘잘못된 발언’을 정정하지 않은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 해군이 칼빈슨호의 인도양 훈련 사진을 공개한 시점도 15일로,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다. 북한이 김일성 전 주석의 생일인 15일 핵실험이나 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을 하지 않자 ‘블러핑(엄포) 전략’을 접은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또한, 항모와 같은 전략자산은 일반적으로 행선지를 미리 공개하지 않는데도 이를 이례적으로 발표한 점과 오스트레일리아와의 연합훈련을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사실을 감춘 데서도 의도성이 묻어난다. 중국 상하이 푸단대 한국학 연구센터 전문가인 카이 지안도 <워싱턴 포스트>에 “심리전 또는 허풍을 바탕으로 한 ‘정교한 게임의 일부’였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의도적 거짓말을 했다면, 동맹을 심각한 위협 속에 빠트린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북한의 ‘오판’으로 우발적 무력충돌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은 칼빈슨호의 전개를 두고 “미국과 괴뢰 호전광(한국)들이 자중, 자숙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참혹할 것”이라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원장은 “이번 사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성’ 전략을 새삼 확인했다”며 “중요한 건 앞으로도 트럼프 행정부가 어디로 어떻게 갈지 알 수 없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시엔엔>(CNN) 방송 등은 백악관과 국방부간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이런 결과가 초래됐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비의도적인 실수였다면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난맥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더 위험하다. 위기가 닥쳤을 때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제대로 통제하거나 관리하고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정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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