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파면 결정을 두고 외신들은 일제히 12일(현지시각) 사설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에서 빛났다며, 재벌경제 및 정치문화를 개혁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날 사설에서 “지난해 말 한국의 충격적인 부패 스캔들이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을 때 많은 한국인이 당혹스러워했다”며 “이제 그들은 자부심을 느껴도 된다”고 평가했다. 신문은 “(헌재 결정은) 대중의 정서를 수용하고 정당한 절차와 법에 근거해 한국이 전세계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번창하는 나라라는 신뢰를 강화했으며, 세계에서 위협받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에 힘을 실어줬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특히 “이제 한국이 전환점에 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은 재벌이 주도하는 허약한 경제뿐 아니라, 정치문화와 외교정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중요한 개혁을 추진해갈 기회를 얻게 됐다”고 밝혔다. 신문은 “한국에는 주요 기업의 부패 경영인을 봐주는 오랜 관행이 있었다. 이런 관행은 중단해야 한다”며 “이번 스캔들로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유죄로 밝혀지면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뉴욕 타임스>도 이날 ‘한국에서의 격동’이란 제목의 사설을 통해 “박 대통령 파면이라는 ‘좋은 소식’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그 제도들이 한층 성숙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신문은 그러나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결정, 이로 촉발된 중국의 경제보복 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나온 박 대통령 파면은 동아시아에서의 긴장고조 시기에 정치적 불확실성을 더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신문은 “이번 스캔들이 부패나 정경유착을, 경제성장을 위한 어쩔 수 없는 결과로 용인하던 이전의 정치질서를 철저하게 개혁하라는 요구로 이어졌다”며 “박 대통령 탄핵으로 부패 스캔들이 끝난 게 아니다”라고 했다. 신문은 “개혁이 필요하다. 박 전 대통령이 개혁을 했어야 한다”고 지적한 뒤, 대북 정책과 관련해서도 “북한과의 협상 시도에 대한 과거의 좌절에도 불구하고, 다시 대북 관여를 시도하는 것이 긴장 증가보다는 낫다”고 제안했다.
앞서 미국 <워싱턴 포스트>도 11일 사설에서 “박 대통령 탄핵으로 한국 민주주의는 진보했으나, 여전히 많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한국 정부가 신뢰를 회복하려면 정치권력과 재벌의 부정부패를 반드시 척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월스트리트 저널>도 12일 사설에서 “차기 대통령은 북한의 위협을 예의 주시하는 한편, 기업가 정신과 경쟁력을 갖춘 경제를 만들 기회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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