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11일(현지시각) 발표한 정권 인수위원회의 면면을 보면 가족과 로비스트, 기성 정치권 인물로 채워져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워싱턴의 부패를 일소하겠다’는 트럼프의 호언장담을 무색하게 한다는 비판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인수위원회는 내년 1월20일 트럼프가 공식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전까지 4000여개 직책의 인물을 인선하고,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인수 작업을 총괄하는 인수위원장에는 공화당 주류를 대표하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 당선자가 새로 임명됐다. 경선 기간 동안 인수위원장을 맡았던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는 부위원장으로 내려앉았다. 펜스 부통령 당선자의 인수위원장 임명은 공화당 주류 쪽 인물 수혈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11일(현지시각) 정권 인수위원회를 개편해 인수위원장을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 당선자로 전격적으로 교체했다. 사진은 지난 3일 당시 공화당 부통령 후보인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가 아이오와주 프롤에서 유세하는 모습. 뉴욕/AFP 연합뉴스
집행위 부위원장에는 크리스티를 포함해, 공화당 경선주자였던 벤 카슨 신경외과 의사, 최측근으로 거론되는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또는 국방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마이클 플린 전 국방정보국 국장,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 제프 세션스 상원의원 등 6명이 임명됐다. 트럼프가 경선 과정에서 롤러코스터를 탈 때도 충성심을 보여온 최측근들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워싱턴 퇴물 주류 정치인들’로 평가받는 사람들이 많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가 11일(현지시각) 정권 인수위원장에서 낙마했다. 트럼프는 이날 인수위를 개편하면서 인수위원장을 크리스티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 당선자로 전격적으로 교체했고, 크리스티는 복수의 부위원장으로 강등됐다. 사진은 지난 10월12일 크리스티 주지사가 뉴저지주 트렌턴에서 연설하는 모습. 워싱턴/AP 연합뉴스
무엇보다 논란이 되는 것은 집행위원회 16명에 트럼프가 가장 신임한다는 맏딸 이방카(35)와 남편 재러드 쿠슈너(35),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39)와 차남 에릭(32) 등 4명의 가족이 들어간 점이다. 나이가 어린 차녀 티퍼니(23)와 막내 배런(10)을 제외하곤, 30대인 자녀들은 다 들어갔다. 이들은 경선 때부터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실세’ ‘비선’이란 소리를 들어왔다.
도널드 트럼프 새 행정부의 정권 인수위원회 멤버로 나란히 들어간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장녀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대선 투표일인 8일(현지시각) 뉴욕의 한 투표소에서 함께 투표하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더욱이 트럼프 당선자와 트럼프 기업 변호사인 마이클 코언은 지난 10일 <시엔엔>(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기업이 운영 중인 호텔과 골프클럽 등 부동산을 비롯해 각종 사업체를 자녀들에게 맡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트럼프 자녀들의 참여는 이해충돌의 망령을 불러일으킨다”며 “그들이 4년간 트럼프 비즈니스를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4명의 가족 외에 나머지 12명에는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거론되는 라인스 프리버스 공화당 전국위원회 위원장과 스티븐 배넌 트럼프 대선캠프 최고경영자가 임명됐다. 트럼프대학이 사기죄로 고소됐을 때 뒤를 봐준 의혹이 있는 팸 본디 플로리다 법무장관, 선거자금 모금 책임자였던 스티븐 므뉴신 듄 캐피털 매니지먼트 최고경영자(CEO) 등도 포함돼 있다.
로비스트들도 인수팀에 대거 들어갔다. 연방통신위원회(FCC) 간부들의 인선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진 제프리 아이저나크는 ‘버라이즌’을 비롯해 미국 굴지의 통신회사를 위해 수년 동안 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클 카탄자로는 ‘데번 에너지’, ‘인캐나 오일·가스’ 등 에너지 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두고 있는 로비스트다. 농무부 인선을 담당하는 마이클 토리는 대형 식품회사를 도와주는 로비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워싱턴의 한 공화당 쪽 로비스트는 <폴리티코>에 “오하이오주의 중고자동차 판매상을 데리고 올 게 아니라면, 누가 인수위에 들어갈 수 있겠느냐”며,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 워싱턴 주류 쪽에 의지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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