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강 한미연합회 사무국장 겸 ‘힐러리 클린턴 한인 지지모임’ 대표
미국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한인들도 이번 미 대선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등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에는 시민권자인 한인 유권자만 25만명 가량 된다. 여기에 영주권자, 주재원, 유학생, 불법체류자까지 한인 상주인구는 모두 1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소수계인 한인들은 전통적으로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지지해 왔다.
지난 14일(현지시각) 로스앤젤레스에서 ‘힐러리 클린턴 한인 지지모임’을 이끄는 한인 2세인 스티브 강(30) 한미연합회 사무국장과 벤 박(47)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 보좌관을 만났다. 이들은 다음달 20일 클린턴 한인 후원행사를 열며, 이 자리에 클린턴 후보도 참석한다.
-한인들이 미국 대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된 이유는 뭔가?
“‘트럼프 효과’가 크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 대해 반감을 넘어선 두려움이 (한인들 사이에)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이민정책 강화, 영주권·비자 문제 등에서 모두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한인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는 것이다. 비자 문제를 강화하면, 이는 곧바로 한인타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영주권자들 가운데 시민권을 취득하려는 비율이 부쩍 늘어난 것도 이와 관련 있다. 그동안 미국 정치에 관심이 별로 없다가, 정치가 자신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닫고 이전과 달리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를 반대해서가 아니라, 한인들이 클린턴을 지지하는 이유는 뭔가?
“한인들 가운데는 한국정치에선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사람도, 미국정치에선 민주당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 민주당 지지가 한인들에게 직접적인 이해관계와 결부돼 있기 때문이다. 소수인종 우대뿐 아니라, 힐러리 클린턴이 이민정책에서 트럼프에 비해 이민자들에게 훨씬 우호적이다. 또 1990년대 빌 클린턴 시대에 미국 경기가 좋았던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런 향수도 한인들 사이에선 힐러리 클린턴 지지에 한몫을 하는 것 같다.”
-클린턴을 지지하는 한인들은 미국 대선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나?
“한인민주당협회가 있고, 이와 별개로 경선 과정에서 한인들의 ‘버니 샌더스 지지모임’, ‘힐러리 클린턴 지지 모임’(Korean American for Hillary) 등이 생겨났다. 또는 오는 10월20일 로스앤젤레스에서 ‘한인 힐러리 클린턴 지지 모임’이 주최하는 힐러리 클린턴 후원행사가 열리고, 이 자리에 클린턴도 오기로 돼있어 이를 준비하고 있다.”
-한인들 뿐 아니라, 아시아인종이 모두 클린턴을 지지하게 될 텐데, 아시안 커뮤니티끼리의 협력관계는 없나?
“한인 힐러리 클린턴 지지 모임’(Korean American for Hillary Clinton)은 또 ‘아시안 힐러리 클린턴 지지 모임’(Asian American for Hillary Clinton)과 연결돼 있다. 필리핀, 중국계 이민자들과 연계해 모임을 갖기도 했다. LA 민주당 대선 예비선거(경선) 전인 4월에 ‘아시안 커뮤니티 힐러리 지지 모임’ 행사가 열려 이 모임에 한인들이 참가하는 형태로 서로 협력하기도 했다.”
-클린턴 쪽에서 한인들의 지지를 의식하나?
“인구센서스 결과를 보면, 로스앤젤레스시의 한인 유권자가 10만8000명, 그리고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전체로는 약 25만명 가량 된다. 미국 선거는 시민권자만이 할 수 있고, 또 사전에 유권자 등록을 해야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인 유권자 등록률이 매우 낮았다. 그러나 한미연합회 등의 적극적 활동 등으로 한인들의 인식이 많이 달라져 이번에는 등록률이 꽤 높을 것으로 본다. 유권자 등록은 선거일 3주 전까지 가능하다. 한미연합회에서도 이를 적극 홍보하고 있고, 선거 당일에는 투표장까지 픽업 서비스 등도 할 계획이다.(미국에선 투표 편의제공이 불법이 아니다) 또 이와 별도로 우편투표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알리고 있다.”
-혹 한인들이 힐러리 클린턴을 ‘짝사랑’ 하는 건 아닌가?
“미국 대선 전체로 봤을 때, 이민 역사가 짧은 한인들은 유권자 등록을 지금보다 훨씬 많이 한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인구가 적어 대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가 되지 못한다. 그보다는 후원 행사에서 후원을 해주기를 클린턴 후보 등이 기대하고 있다. 또 클린턴은 한인타운을 여러번 방문했다. 예비선거 때 또 대선후보로는 처음으로 한국어로 텔레비전 대선 광고를 했다. 한국인들이 이에 상당히 고무됐다.”
-관건은 샌더스 후보 지지층들이 얼마나 클린턴 후보 쪽으로 움직여주느냐인 것 같다.
“샌더스 후보 지지층들이 클린턴 지지 쪽으로 아직 돌아서지 않고, 일부는 제3당(녹색당) 후보한테로 가거나, 또 일부는 선거 당일 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젊은 1.5세, 2세 한인들 가운데도 상당수가 샌더스 후보를 지지했고, 이들의 실망감이 상당하다. 그러나 투표 당일이 가까워지면, 결국은 그들도 클린턴 쪽으로 돌아설 수 밖에 없지 않겠나.”
-한인들의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지지는 민주당 후보여서 지지하는 경향이 강하지 않나? 민주당 후보가 한인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후보 자체에 대한 매력은 떨어지고 비호감도 강하지 않나?
“버락 오바마가 처음 등장했을 때 미국 대선을 지배한 것은 ‘새 희망’(New Hope)이었다. 그러나 지금 미 대선을 장악한 것은 ‘공포’(fear)다. 클린턴 후보가 좋아서라기보단,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는 끔찍한 상황을 두려워 하는 것이 사람들을 클린턴 후보에게 향하게 하는 요소가 강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클린턴 후보의 비호감은 그가 여자이기 때문이라는 점도 있는 것 같다. 이메일 스캔들, 사실 저도 개인적으로 문제라고 본다. 하지만 감기(폐렴) 걸린 것을 가지고 지나치게 요란을 떠는 것 등은 힐러리가 여자라는 점 때문에 더 혹독한 공격과 의심을 받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힐러리가 너무 강하다 하고, 또 한편으론 약하다 하고, 불공평한 것 아니냐.”
-한인들 가운데는 공화당 트럼프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도 꽤 되지 않나?
“(부자동네인) 오렌지 카운티 지역에는 일부 트럼프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 상당수는 이미 어메리커나이즈드된 사람들이 많다. 경제적 안정을 누리고 있어서 공화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고, 또 종교적 이유 등으로 공화당을 지지하는 경향도 있다.”
벤 박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케빈 디 레온) 보좌관
-한인으로서 클린턴이 대통령이 된다면 바라는 게 뭔가?
“한인을 위한 정책도 필요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건 각료(cabinet member) 등 주요 직책에 한인들을 뽑아 기용됐으면 한다. 한인 역사를 보면, 1세는 노동, 1.5세, 2세는 학교(교수, 연구원), 프로페셔널(의사, 변호사) 등에 종사한다. 그 다음 3세는 정치로 가야 한다. 그 사회의 일원으로 뿌리내리기 위해 한인 커뮤니티에서 정치인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로스앤젤레스의 한인 공동체가 충분히 크고, 또 케이팝 등 한국문화의 영향력, 한인으로서의 자존감 등도 지금 젊은 한인들 사이에선 상당하다. 앞으로 한인들 중에도 연방 상원의원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지 않느냐. 그러려면 메인 스트림으로 가야 하고, 한인들의 정치의식과 참여도 더 높아져야 한다”
-젊은 한인 정치지망생 가운데 롤 모델이 있나?
“데이비드 류. 로스앤젤레스 시의원이다. 한국에선 시의원이라면 대단하게 보지 않지만, 로스앤젤레스의 시의원은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고, 보좌관만 30명이다. 로스앤젤레스는 한인도 많지만 히스패닉 인구가 워낙 많아 당선이 쉽지 않았는데, 데이비드가 그 보기를 보여줬다. 데이비드 류의 당선 이후, 많은 한인 정치지망생들이 생겨날 것 같다.”
로스앤젤레스/글·사진 권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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