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8일(현지시각)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의 디트로이트 이코노믹 클럽에서 부자 감세를 뼈대로 하는 자신의 경제정책 구상을 밝히고 있다. 디트로이트/AP 연합뉴스
‘무슬림 비하 발언’에 따른 지지율 급락과 공화당 주류층의 잇딴 이반으로 사면초가에 몰려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가 대규모 감세 정책 등을 내걸며 국면 전환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의 감세 정책은 수혜 대상이 최상위 소득층에 집중돼 있는 ‘부자 감세’여서, 백인 노동자층의 대변자처럼 행세해온 그동안의 행보와 엇박자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는 8일(현지시각)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디트로이트 이코노믹클럽’ 주최로 열린 강연회에서 대규모 감세, 규제완화, 무역협정 재검토 등을 뼈대로 하는 자신의 경제 구상을 선보였다. 미 언론들은 구체적인 새로운 내용은 눈에 띄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우선, 그는 감세 정책과 관련해 고소득자에 대한 최고 소득세율을 현행 39.6%에서 33%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 등 주류들이 만들어놓은 ‘33%’안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부자 감세 기조를 분명히 한 것이다.
트럼프는 또 “미국의 노동자들은 평생 세금을 냈고 따라서 사망한 다음에도 다시 과세해서는 안 된다”며 상속세 폐지도 약속했다. 현행 35%인 최고 법인세율도 15%로 대폭 낮추겠다고 밝혔다.
그는 ‘서민’들을 위해 육아 비용을 소득공제 대상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뉴욕 타임스>는 “저소득층이나 저소득 중산층 가정들은 연방소득세를 거의 내지 못하기 때문에 소득공제에 따른 혜택을 거의 받을 수 없다”며 “상위 중산층과 부유한 가구에 훨씬 유리한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도 이날 “트럼프의 세금 공약은 결국 대기업, 그리고 트럼프 본인과 같은 거부들, 그 연설문을 쓴 당사자들(트럼프 경제팀)에게 거대한 세금 혜택을 주는 것일뿐”이라며 “상위 1%만 돕는 경제 구상”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는 또한 환경 및 에너지 정책을 포함해 대부분의 분야에서 규제를 크게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트럼프는 에너지 규제가 제조업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며 지난 4월 미국을 비롯해 177개국이 서명한 ‘파리 기후변화 협정’을 파기시키겠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이번에도 보호무역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많은 미국인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준 ‘지켜지지 않은 약속’(broken promise)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사례”고 비판했다.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그리고 수십년 동안 무역협정에 대해 틀린 주장을 해 온 이른바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한국과의 무역협정으로 미국의 수출이 100억달러 이상 늘고 7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예측했다”며 “그러나 이런 약속들은 다 거짓임이 판명됐다”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이날 경제정책 연설은, 공화당 주류를 형성하는 재정적 보수주의자들과 백인 노동자 계층을 끌어안아 당의 단합과 지지율 만회를 꾀하기 위한 국면 전환용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공화당 성향 인사들의 ‘반 트럼프’ 행진은 이날도 계속됐다.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주로 근무했던 외교안보 전문가 50명은 이날 <뉴욕 타임스>에 연명 서한을 보내 “(트럼프는) 인격과 가치관, 경험이 결여돼” 있으며, “미국 역사상 가장 무모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한에는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낸 마이클 헤이든 및 로버트 졸릭 전 국무부 부장관을 비롯해, 네오콘적 성향의 존 네그로폰테 전 국무부 부장관 등이 이름을 올렸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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