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7일 뉴욕주 브루클린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을 하기 위해 무대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 브루클린/AFP 연합뉴스
‘힐러리 클린턴’의 날이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7일 캘리포니아, 뉴저지 등 6개 주에서 동시에 치러진 미국 민주당 경선에서 경쟁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에 맞서 4개 주를 승리로 이끌었다. 특히 클린턴은 8일(현지시각) 새벽 3시 현재, 민주당의 아성이자 가장 많은 475명의 대의원이 할당된 캘리포니아에서 박빙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큰 격차로 샌더스를 앞서가고 있다.
개표가 완료되면 클린턴은 이날 승리로 유권자들이 뽑는 선출 대의원만으로도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 대의원 2383명을 넘어설 것으로 미 언론들은 내다봤다. 이럴 경우 오는 7월 클리블랜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샌더스가 이른바 ‘슈퍼 대의원’을 움직여 후보 지명을 뒤집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클린턴은 이날 밤 뉴저지 승리가 확정된 직후 뉴욕주 브루클린에서 지지자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자신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됐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이날 밤 10시22분께 단상에 오른 그는 지지자들한테 손을 흔들거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승리의 여유를 만끽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8년 전 버락 오바마 당시 민주당 경선 경쟁자에게 ‘패배 인정’ 연설을 할 때와 정반대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 심호흡을 크게 하며 기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연설 첫머리에서 “여러분들 덕분에, 우리는 이정표에 도달했다. 미국 역사상 여성이 처음으로 주요 정당의 대선 후보가 됐다”며 ‘여성 후보’라는 상징성을 부각시켰다. 그는 “오늘의 승리는 누구 한 사람의 승리가 아니다. 그것은 이 순간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세대에 걸쳐 투쟁하고 희생해온 여성과 남성들의 승리”라고 강조했다. 4000명에 이르는 지지자들은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특히 클린턴은 1848년 뉴욕주 세니커폴스에서 여성 참정권 획득을 위한 여성권리대회가 열리고 ‘소신 선언’이 채택된 사실을 거론하며 “우리 모두 당시 선언에 참여한 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으며, 오늘 밤은 우리 모두의 승리”라고 밝혔다.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받았음을 선포한 인류 최초의 선언을 상기시키면서, 여성 대선 후보로서의 역사적 의미와 접목시킨 것이다.
그는 트럼프와의 본선 경쟁을 염두에 둔 듯, 연설 중간부터는 트럼프에 대해 날선 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클린턴은 “트럼프는 두려움을 지피고 상처에 소금을 문지르기를 원하면서, 그가 얼마나 위대한지 우리에게 상기시키려고만 한다”고 비판했다. 트럼프의 막말이 여러 사람의 상처를 덧나게 한다는 사실과, 그가 ‘자아도취적’ 형임을 비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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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은 이어 “트럼프는 단순히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장벽을 세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미국인들 사이에 벽을 세우려고 한다. 트럼프는 우리가 대변하는 모든 것과 배치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점에서 트럼프가 대통령과 군통수권자의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클린턴은 샌더스 지지자들을 끌어안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도 보였다. 클린턴은 “샌더스는 오랜 공직생활을 통해 진보적인 명분을 위해 투쟁해왔다. 특히 토론 과정에서 소득불평등 문제를 제기한 것이 민주당에 도움을 줬다”며 샌더스를 칭찬했다.
연설을 마친 클린턴은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3초가량 포옹을 한 뒤 지지자들 속으로 들어가 함께 사진을 찍거나 대화를 나누며 퇴장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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