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가 3일 인디애나주 경선에서 승리를 확정지은 뒤 뉴욕으로 돌아가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나는 절대로 공화당을 접수하기를 원치 않는다. 나는 공화당과 같이 일하고 싶다. 우리는 단결을 가져와야 한다.”
테드 크루즈에 이어 존 케이식까지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을 포기한 뒤 사실상 후보로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가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공화당은 트럼프와 ‘같이 일하고’ 싶지 않다.
대통령을 지낸 조지 부시 부자가 4일 각각 측근을 통해 트럼프에 대한 공개지지를 할 계획이 없다고 발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아버지 부시는 퇴임 이후 모든 공화당 대선 후보에 대한 정력적 지지를 했으나, 이번에는 91살 고령을 핑계댔다. 아들 부시는 “대통령 선거운동에 참여하거나 논평할 계획이 없다”고만 밝혔다.
<뉴욕 타임스>가 지난 이틀 동안 트럼프의 후보 확정과 관련해 70여명의 공화당 상·하원 의원, 주지사, 기부자들의 반응을 물은 결과, 20여명만이 비서를 통해 ‘아직 입장이 없다’고 답변했다. 대부분은 “여행 중”이라거나 “너무 바쁘다”며 답변하지 않았다. 극히 일부 인사가 성명을 냈다.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4일 저녁 7시가 되어서야 보도자료 형식으로 트럼프는 “우리 당을 우리의 목적들에 따라 단결시킬 기회와 의무를 가졌다”고 발표했다. 그를 대선 후보로 지지한다기보다는 그가 공화당의 강령과 정책에 충실해야 한다는 촉구다.
트럼프에게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한 공화당 인사들도 많다. 찰리 베이커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이날 트럼프에게 투표하지 않을 거라고 발표했다. 나중에 그의 대변인은 베이커 주지사가 힐러리 클린턴에게도 투표하지 않을 거라고 덧붙였다. 히스패닉 주민이 많고 공화당과 민주당의 경합주인 네바다주의 딘 헬러 상원의원은 “나는 우리의 후보를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공화당의 최대 큰손 코크 형제의 형 찰스 코크는 이미 클린턴이 더 나은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당내에서는 트럼프를 대선 후보로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현실론’이 늘고 있다. 켈리 에이욧 상원의원(뉴햄프셔)은 트럼프를 지지할 것이나, 공개 지지는 안 한다고 밝혔다. 트럼프를 공화당 대선 후보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나, 그를 위해 선거운동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에이욧의 이런 입장은 공화당 주류 인사들이 사적인 자리에서 트럼프의 대선 후보 지명을 놓고 자주 얘기하는 ‘비비 꼰’ 표현이다. 라울 라브라도르 하원의원은 “그를 지지할 것이나 헌법이나 정치에 대해 알지 못하는 그가 웃긴다”고 경멸적으로 말했다.
당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대선에서 당의 외연을 확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도 한다. 트렌트 롯 전 상원 원내대표는 트럼프가 보수적인 민주당원과 무당파, 그리고 투표하지 않는 공화당원에게 인기가 있다는 것을 평가하게 되면 더 많은 공화당원들이 트럼프 주위로 몰려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내 고향에서도 트럼프를 지지하는 노조원들이 있다”고 했다. 공화당의 선거전략가인 톰 콜 하원의원(오클라호마)은 “주 차원에서는 민주당 지지가 우세하나, 선거구에서는 공화당 지지가 우세한 지역의 많은 공화당원들은 크루즈보다는 트럼프가 도움이 된다고 본다”며 “각자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을 취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는 각 선거구의 사정에 따라 트럼프에 대한 입장을 정하자는 ‘각자도생’으로 결론난다. 엘리스 스테파닉 하원의원은 “히스패닉이 많이 사는 선거구라면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계산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고 말했다.
현재 공화당 주류의 대체적 분위기와 표정은 트럼프에 대한 부인과 저항에서 ‘마지못한 수용’이라 할 수 있다. 필 브라이언트 상원의원은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촉구하면서 “우리에게 두 가지 선택, 트럼프와 힐러리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으려면 며칠, 몇주가 더 걸릴 것이다”며 “현실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할 수밖에 없고, 나는 공화당원들이 현실론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에게 고무적인 움직임도 있다. 후보 경선에서 트럼프를 반대하는 운동을 펼친 최대 단체 ‘위대한 미국’이 트럼프 지지를 위한 기부자 회의를 연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에 대한 거부감이 가장 강한 공화당 기부자, 즉 돈 많은 상류층과 재계가 선회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선 때 자신의 돈으로 선거운동을 한다고 큰소리쳤던 트럼프는 크루즈 등 경쟁자들의 사퇴 뒤 즉각 대선 모금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공화당과 그 실질적 주인들인 재계와 큰손들에게는 이단적인 트럼프의 공약이 건재하다면, 운신의 폭이 넓어질 여지가 없다. 그는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고, 해외 개입을 경계하고, 사회복지 프로그램 강화를 내걸었다. 그를 공화당 대선 후보로 만든 대중적 인기의 요인이기도 하고, 공화당 주류들이 그를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트럼프와 공화당이 화해하는 데 넘어야 할 본질적 사안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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