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가 지난 2월28일 앨라배마주 매디슨에서 유세하던 중 자신의 외교안보 분야 자문 역할을 하는 ‘국가안보위원회’의 위원장인 제프 세션스 상원의원이 지지 연설을 하는 것을 옆에서 듣고 있다. 매디슨/AP 연합뉴스
“동맹국이 100% 부담” 발언 파장
“그들이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미국은 세계 경찰역 못해”
전액부담-미군철수 택일 요구
집권땐 실제 단행할지 촉각
트럼프, 공화 주류와 견해차 커
공약 조정과정서 내홍 불가피
“그들이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미국은 세계 경찰역 못해”
전액부담-미군철수 택일 요구
집권땐 실제 단행할지 촉각
트럼프, 공화 주류와 견해차 커
공약 조정과정서 내홍 불가피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의 4일(현지시각) ‘해외 주둔 미군’에 대한 주둔국의 방위비 추가 분담 요구와 철수 압박 발언은 처음 나온 게 아니다. 그러나 이날 트럼프의 발언은 경쟁 후보들이 경선 포기를 선언하고 그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직후에 나온 것이어서, 관심과 우려의 무게도 다를 수밖에 없다.
우선, 트럼프가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에 미군 주둔 비용 100% 전액을 떠안기려고 시도할지가 관건이다. 이날 트럼프는 <시엔엔>(CNN) 방송 진행자의 질문에 1초 정도 생각하는 듯 마는 듯 하다가 “100% 부담은 왜 안 되냐”고 되물었다. 미리 준비했다기보다는 즉흥적으로 나온 대답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이 되면 이런 즉흥성이 주변국에 더 위험할 수 있다. 미국의 대통령제 및 거대한 관료제의 속성상, 대통령의 말이 ‘실수’라고 할지라도 이를 이행하기 위해 모든 정책 자원을 동원하려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협상 과정에서 한국 등 동맹국에 거대한 압박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한국을 비롯해 동맹국들에 주둔 비용 100%를 부담시키는 것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폭의 분담금 인상을 요구할 것은 확실하다.
둘째, 한국이 트럼프 진영의 집중적인 표적이 되고 있느냐의 여부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가장 정제된 형태로 자신의 견해를 내놓은 트럼프의 지난달 27일 외교안보 정책 연설을 보면,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아시아의 동맹국 정상들을 만나 “방위비용의 균형을 다시 맞추는 일”을 논의하겠다고 했다. 나토를 제외하면 한국이나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등 특정 국가를 적시하지는 않은 셈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방위비 분담과 관련해 ‘동맹 재조정’이라는 큰 원칙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는데다, 큰 규모의 미군이 주둔하는 아시아 동맹은 한국과 일본이 거의 유일하다. 따라서 한국이 트럼프의 표적에서 외곽에 위치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트럼프가 한국을 집중적인 손봐주기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대체로 트럼프가 한국을 언급할 때는 독일, 일본 등을 거의 동시에 거론해왔다. 또 트럼프가 정교하게 계산된 발언을 하는 성향이 아니어서 경중을 따지기가 어렵다.
셋째로, 주둔국이 미국의 거액의 방위비 분담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과연 미군을 철수시킬 것이냐의 문제다. 이에 대해선 협상 카드인지, 실제 미군 철수까지 단행하겠다는 것인지 트럼프의 속내를 알 수 없다는 데 불확실성이 도사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는 대외정책 연설에서 “미국의 외교정책은 예측 불가능해야 한다”며 ‘모호성 원칙’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의 전통적인 대외정책은 동맹국의 신뢰를 얻기 위해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을 강조했지만, 트럼프는 이와 정반대의 전략을 채택하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의 속내가 드러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트럼프가 일관되게 ‘세계 경찰로서 미국의 역할’을 포기할 수 있음을 시사하며 고립주의 노선을 천명한 점과, 미국 내 여론을 살펴볼 때, 그가 대통령이 되면 미군 철수나 축소가 가시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첫번째 대상은 나토 쪽이 될 확률이 높다. 트럼프는 나토의 성격이 “냉전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슬람 테러리즘과 이민 문제에 함께 맞서는 것으로 역할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트럼프의 인식이 한반도에까지 확대되면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도 한-미 간 협상 테이블 위에 올라올 수 있다. 일본에도 최소한의 미군만 주둔시킨 뒤, 한국과 일본이 자체적으로 북한의 위협 및 중국의 부상에 대처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트럼프가 대외정책의 정서적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 명백해 보이는 미국 내 극우 보수 성향의 자유지상주의자 그룹도 이런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세계 각국에 미군을 주둔시켜 가상의 적을 견제하고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려는 전통적인 공화당의 견해와 완전히 다른 것이어서, 대선 후보 공약 조정 과정에서 트럼프와 공화당 주류 간에 내홍이 불거질 수 있다.
워싱턴 도쿄/이용인 길윤형 특파원, 이제훈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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