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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급진 우파 이념 공세에…보수 주류 ‘우왕좌왕’

등록 2016-04-26 20:47수정 2016-04-26 20:47

조성대 교수의 미 대선 깊이 보기
⑦ 미국 공화당은 왜 망가졌나
종반전으로 치닫고 있는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은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승기를 굳히고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맹추격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과반의 대의원을 확보하지 못해 ‘경쟁 전당대회’를 치를 것이란 전망이 여전히 우세하다. 주류 입장에서 보면 애가 탈 일이다. 공화당은 어쩌다 이 지경까지 몰렸을까?

지난 반세기 이상의 역사를 보면, 공화당이 실패한 시기에는 한결같이 ‘실용파 대 이념파’의 갈등이 존재했다, 즉, ‘주머니 속의 현찰’을 강조하는 주류 실용파에 대한 ‘기독교 근본주의와 자유지상주의’로 무장한 이념파의 치열한 공세가 당을 분열시키곤 했다.

극단적 이념파의 벼랑끝 전술에
“반대만 일삼는 당” 리더십 분열

침묵하는 다수 당원들
주류 후보들 난타전에 염증
저소득·저학력층도
기득권 주류 아닌 트럼프 쪽으로

노동자층 ‘계급 배반 투표’
양당제 흔드는 위기 징후

1950년대 정부기관 도처에 암약하는 공산주의자들을 잡겠다는 매카시즘은 1958년 선거에서 상원 15석, 하원 49석을 민주당에 내주는 기폭제가 됐다. 1964년 반노동과 반공의 상징인 배리 골드워터의 대선 도전도 1980년까지 상원을, 1994년까지 하원을 민주당에 바치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넉넉한 주머니와 빵을 원할 때, 신앙에 대한 헌신과 개인의 자유에 이념적으로 과도하게 집착한 결과였다.

2000년대의 공화당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른바 ‘티파티’(TEA-Taxed Enough Already -Party)의 등장이 그것이다. 작은 정부와 개인적 자유를 위한 보수주의 유권자 운동으로 출발한 티파티는 의회 선거에서 공화당 내 독자후보를 내어 당선시켰다. 또한, 종교적 세속주의에 바탕을 두긴 했으나 의회 안에서 때때로 기독교 복음주의와 연합하며 공화당 내 급진우파 파벌로 자리매김해왔다. ‘하원 자유 코커스’(House Freedom Caucus)는 티파티의 대표적인 조직으로, 40명의 급진우파 의원들이 247명의 하원 다수당을 쥐락펴락해 의회 리더십을 실종시켰다.

오바마 행정부 아래 공화당 리더십은 티파티를 포함한 급진적 우파의 이념 공세로 극심한 분열 양상을 보였다. 급진적 우파들은 오바마의 건강보험개혁에 예산을 한 푼도 줄 수 없고, 테러 방지를 위해 국가안보기구가 시민들의 전화기록을 확보할 권한을 갖는 것은 헌법 정신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인 약 1200만명의 불법이민자들은 강제 추방해야 하고, 앞으로 불법이민과 테러의 위험이 다분한 무슬림의 입국을 더 강하게 통제해야 한다고 밀어붙였다. 민주당 행정부와 타협을 모색하려는 공화당 주류들은 이들의 공세 앞에 우왕좌왕했다.

급진우파들에게 타협이란 부패와 타락을 의미했다. 이념적 순결성에 입각한 벼랑끝 전술의 구사는 급진우파들의 한결같은 특징이었으며, 실용파 주류들을 곳곳에서 궁지로 몰아넣었다. 이에 따라 공화당은 상 ·하원 모두에서 압도적인 다수당의 지위를 누림에도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일삼는 당이란 이미지가 고착화됐다. 2013년 모든 연방정부관공서가 보름간 문을 닫아야 했으며, 심지어 2015년 10월 그간의 모든 정치 실패에 책임을 지고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러한 당의 위기가 2016년 경선과정에서 어떻게 표출되는지 알아보려면 공화당 지지층을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출간된 <공화당의 네 얼굴>(H. 올슨 & D. 스칼라 지음, 2015)을 보면, 공화당 기층은 이념과 종교라는 두 축으로 구분된다(그래픽 참조). 공화당 지지자 중 35~40%가 ‘다소 보수적’ 유권자로, 최대 다수를 이룬다. 다음으로 25~30%는 ‘자유·중도적’ 지지층이다. 이념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지지층도 25~30%에 이르는데, 이는 다시 ‘복음주의’(20%)와 ‘세속주의’(5~10%) 집단으로 구분된다.

그동안 공화당의 대선 경선은 네 개의 지지자 범주 중 두 개 혹은 그 이상 범주 간의 연합으로 결정돼 왔다고 한다. 예를 들어, 2000년 경선에서 조지 부시는 ‘다수 보수적’과 ‘매우 보수적-복음주의’ 범주의 연합으로, 지난 2008년 존 매케인은 ‘다수 보수적’과 ‘자유·중도적’ 범주의 연합에 의해, 그리고 2012년 밋 롬니는 ‘다소 보수적’과 ‘매우 보수적-세속주의’ 범주의 연합으로 후보직을 거머쥐었다. 전반적으로 공화당 기득권층인 주류가 침묵하는 다수인 ‘다소 보수적’ 공화당원을 중심에 놓고, 시대적 의제에 따라 다른 범주의 지지층과 연합하는 형태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틀로 2016년 공화당 대선 경선을 살펴보면 공화당의 위기 상황을 그럭저럭 읽을 수 있다. 경선 초기 주류 진영 쪽에선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 등 여러 명의 후보들이 나와 ‘다소 보수적’ 지지층에 구애하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주류들 간의 난타전은 기득권에 대한 피로감과 함께 침묵하는 다수들의 눈을 딴 곳으로 돌리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크리스티, 부시에 이어 루비오까지 중도에 사퇴했고, 케이식 만이 남아 ‘자유·중도적’ 범주를 중심으로 ‘다소 보수적’ 공화당원에게 호소하고 있지만 선두를 따라잡기는 불가능한 상태다.

반면, 당내 급진우파의 지지를 등에 업은 크루즈 후보는 경제 정책에서 작은 정부론과 일률과세를 주장해 ‘매우 보수적-세속주의’ 범주를 흡수하고, 낙태와 이민 정책에 대한 극우적인 입장을 통해 ‘매우 보수적-복음주의’ 지지층까지 등에 업으며 선전하고 있다. 나아가 선두를 달리는 트럼프의 반공화당적 행보를 공격하며 공화당 주류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최소한 유권자 지지에서 크루즈가 트럼프를 앞설 것 같지는 않다. 트럼프가 최대 유권자층인 ‘다소 보수적’ 공화당원에서 누구보다 선전하고 있으며 ‘자유·중도적’ 지지층에서도 케이식을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현상의 이면에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해온 백인 노동자계급의 소외가 존재하고 있음을 설명한 바 있는데,(<한겨레> 3월21일치 14면 참조) 이를 공화당의 위기라는 관점에서 풀이할 수도 있다. 전통적으로 공화당은 당의 단합이라는 명분 아래 계급 평화(class peace)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왔다. 이는 부분적으로 유럽의 경험과 달리 미국에서 노동운동이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보다 기존의 정당정치에 편입된 채 이익집단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노동자의 계급 갈등이나 투쟁이 정당정치의 전면에 부각되는 일이 거의 없었고, 여기에 양당제는 좌우 갈등을 희석하고 정당을 중도로 수렴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이처럼 잠자고 있던 계급문제가 정당정치의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오바마 행정부의 등장과 일정 정도 연관이 있다. 미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지휘하는 민주당 행정부의 등장은 인종적 편견을 지니고 있던 백인 노동자들을 민주당으로부터 일정 부분 이탈시켰다. 그들은 이념적으로 보수가 아니었음에도 공화당이 자신의 바람을 실현해주길 원했다. 미국선거연구(ANES) 조사를 보면, 2008년에서 2012년까지 소득수준 16% 이하와 33% 이하의 유권자층에서 공화당 지지는 각각 6.9%포인트와 6.2%포인트 증가했다. 아울러 고졸 이하 유권자층에서도 공화당 지지가 4.9%포인트 늘었다. 가난한 자가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계급배반투표의 역설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공화당으로 편입된 이들이 같은 처지의 기존 지지자들과 함께 목격한 공화당은 지난 1980년 레이건 대통령의 공화당으로부터 한발짝도 벗어나지 않은 모습이었다. 공급 중심 경제와 민영화, 감세, 자본소득 등이 중요시되는 반면, 사회안전망이나 국민건강보험, 안전한 일자리 등은 등한시하는, 그야말로 일부 대기업과 금융자산가들의 정당이었다. 따라서 주류에 대한 염증은 불을 보듯 뻔했고 그들의 바람을 속 시원하게 내질러주는 백만장자 아웃사이더는 시원한 청량제와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조성대 조지워싱턴대 방문교수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조성대 조지워싱턴대 방문교수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결국, 공화당 주류들은 2016년 미 경선을 자유지상주의와 복음주의에 편승한 급진우파 후보와 백인 노동자계급의 열광적 지지에 편승한 아웃사이더 후보 간의 경쟁에 내맡긴 채 설 자리를 잃었다. 160년 전통의 명문정당이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관심거리다.

조성대 조지워싱턴대 방문교수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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