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160㎝ 가량의 자그마한 미국인 여성이 달러 지폐를 붙여 만든 깃발을 들고 행진을 했다. 깃발에는 시티그룹과 엑손 등 정치자금으로 거액을 대는 기업들의 로고가 빼곡하게 박혀있다. 전직 특수교육 교사인 앤드리아 리아(66)는 “미국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대기업과 몇몇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과두 정치’”라고 잘라 말했다. 그의 깃발은 미국 금권정치와 과두 정치에 대한 항의였다.
미국 독립과 민주주의의 성지로 불리는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 자유의 종 앞에서 2일 오전 11시부터 40여분간 ‘민주주의의 봄’(Democracy Spring)을 위한 출정식을 마친 200여명의 시위대가 워싱턴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들은 열흘동안 220㎞를 걸어 11일 워싱턴 의사당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어 18일까지 의회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이며 “돈 경선”을 막기 위한 입법을 요구할 예정이다. 체포 위험을 무릅쓴 ‘대규모 시민불복종’ 운동도 선언했다.
필라델피아 ‘자유의 종’서 출정식
200여명의 시위대 워싱턴으로
220㎞ 걸어 11일 의사당 도착
‘돈 경선’ 저지 입법요구 주장키로
“미국 민주주의는 과두정치다”
슈퍼팩 반대·1인1표 주장
‘오큐파이’ 계승 풀뿌리운동 규정
대규모 시민불복종 운동 선언도
‘돈 선거’로 치러지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회복하자는 취지의 ‘민주주의 봄’ 캠페인에 참여한 전직 특수교육 교사 앤드리아 리아가 2일 미국의 금권정치를 풍자하는 깃발을 들고 필라델피아에서 워싱턴을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번 ‘민주주의 봄’ 캠페인을 지난 2011년 월가의 ‘상위 1%’가 미국 사회와 정치를 주무르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며 나온 ‘오큐파이 월스트리트’(Occupy Wallstreet) 정신을 계승하는 풀뿌리운동으로 규정했다.
리아는 오랫동안 장애아동을 가르치는 특수 교사였다. “16살짜리가 세살배기처럼 행동하는” 아이들을 가르쳐 취직을 시킨 뒤 “점심도 안 먹으며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연락이 올 때 가장 기뻤다고 그는 말했다. 2011년 은퇴할 때까지도 정치적 시위와는 관계없는 그저 자신의 일에만 충실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난 2010년 미국 대법원이 기업의 정치자금 지출에 대한 총액 제한을 없애버린 이른바 ‘슈퍼팩’(슈퍼 정치활동위원회) 합법화 판결이 그를 거리로 불러냈다. 대법원 판결에 항의해 평생 처음 2011년 시위에 참여했다. 대법원 판결이 “부패를 합법화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그가 살고 있는 플로리다주 플로럴에도 2008년 금융위기로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고, 많은 이웃들이 집을 잃었다”고 한다.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그는 행복한 편이다. 리아는 “많은 사람들은 시간당 7달러의 저임금을 받으며 힘들게 산다. 정치와 금융자본의 결탁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돈을 도둑맞고 있다”고 말했다.
행진대열이 펜실베니아 주립대학 앞을 지나면서 시위대들이 외치는 “이것이 민주주의다”,“1인1표” 등의 구호 소리가 커졌다. 슈퍽팩이 존재하는 한, 모든 사람이 ‘1인1표’의 동등한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번 캠페인에는 퍼블릭 시티즌, 무브온 등 미국의 내로라 하는 시민단체와 미국 최대 노조인 산별노조총연맹(AFL-CIO) 등 120여곳이 지지선언을 했다.
이번 캠페인의 현장 책임자인 헨리 자크즈는 “우리는 초당파를 지향한다”며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라도 돈선거에 반대한다면 참여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필라델피아/글·사진 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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