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상원의원)가 8일(현지시각) 저녁 뉴햄프셔주 내슈어에 위치한 ‘커뮤니티 컬리지’ 체육관에서 열린 유세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공화당 루비오 유세 현장, 힐러리·샌더스 차별화 부각
“내가 대통령되면 미국을 군사적으로 더 강하게 만들것”
트럼프 유세 5천여명 참가…샌더스도 막바지 세몰이
“내가 대통령되면 미국을 군사적으로 더 강하게 만들것”
트럼프 유세 5천여명 참가…샌더스도 막바지 세몰이
미국 최초로 9일(현지시각) 예비선거(프라이머리)가 열리는 뉴햄프셔주의 맨체스터 공항에 8일 오후 도착하자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미리 예약한 세단 승용차를 렌트해 호텔까지 엉금엉금 기어갔다. 날이 어두워지는데다 차선은 보이지 않았고 눈발은 차 창문을 때려 앞을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한낮에도 영하 7℃에 머무르고 거의 모든 뉴햄프셔 지역엔 눈폭풍 경보가 내려졌다.
아니나 다를까. 맨체스터에서 차로 20분가량 떨어진 내슈어의 ‘커뮤니티 컬리지’ 체육관에서 8일 저녁 6시30분부터 열린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후보(상원의원)의 유세 현장에는 참석자가 500여명 남짓에 그쳤다. 아이오와주 당원대회(코커스)에서 잠재력을 보여주며 공화당 주류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했음에도 궂은 날씨가 현장의 열기를 반감시키는 듯 했다.
저녁 6시45분쯤 체육관 후문을 통해 등장한 루비오는 바로 연설대로 올라가지 않고, 별도로 마련된 인터뷰 자리에서 <폭스 뉴스>의 간판 여성앵커 메긴 켈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켈리는 지난해 공화당 후보들 텔레비전 토론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날카롭게 몰아친 뒤 트럼프로부터 막말을 듣는 등 봉변을 당했다. 그럼에도 그가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 루비오의 지지자들한테 손을 흔드는 모습은 공화당 주류들의 표심이 루비오에게 가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처럼 비춰졌다.
사회자가 루비오가 인터뷰를 진행하니 구경을 하라고 청중들에게 안내하는 것도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한국적 관점에선 후보자가 유권자들을 다소 무시하는 듯한 태도로 비춰질 수 있음에도 청중들은 게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되레 인터뷰 현장 주변에 모여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인터뷰에 이어 단상에 오른 루비오는 같은 당 소속의 공화당 후보보다는 힐러리 클리턴 전 국무장관이나 버니 샌더스 민주당 후보(상원의원)들에 대한 공격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초선의원인 루비오의 짧은 경험을 집중적으로 공격해온 공화당 후보들을 대적하는 대신, 자신이 민주당 대선 후보들과 맞설 수 있는 거물급임을 부각시키려는 전략인 셈이다. 가족을 모두 동반하고 나온 루비오는 “힐러리는 ‘이메일 스캔들’ 때문에 어렵고 샌더스는 사회주의자여서 안 된다”며 “내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을 군사적으로도 더 강하게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이날 루비오 유세 현장에서 3명의 참석자와 인터뷰한 결과, 2명은 루비오 지지자들이 아니었다. 한명은 아직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않은 ‘무당파’를 자처했고, 한 사람은 샌더스 쪽으로 기울어 있는 민주당원이었다. 루비오 지지자라고 밝힌 참석자는 1명뿐이었다. 최초의 프라이머리를 실시하는 주라는 자긍심에 걸맞게 ‘아이 쇼핑’처럼 여러 후보들의 유세를 ‘구경하고 평가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비춰졌다.
게다가 뉴햄프셔 유권자들은 무당파가 40%가 넘어 정당 소속감이 가장 약한 주로 알려져 있다. 대신, 뉴햄프셔 유권자들은 정책을 평가해 투표하는 경향성이 강하다. 뉴햄프셔주 유권자들이 변덕이 심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정당 소속감이 약하고 정책 위주의 투표성향 때문이다. 게다가 뉴햄프셔에선 무당파들이 공화당이나 민주당 아무 쪽으로나 가서 투표를 할 수 있다. 따라서 무당파들의 표심이 득표 결과에 상당한 영향력을 차지하고 있다.
자신을 루비오 지지자라고 밝힌 짐 선더스(47)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도입한 건강의료보험법(일명 오바마케어)은 “너무 비싸서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 버니 샌더스 민주당 후보가 주장하고 있는 보편적 의료보험이 훨씬 낫지 않느냐’고 묻자, “비현실적”이라며 “루비오가 의료보험 비용을 낮출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루비오가 의료보험을 낮춘다는 공약을 내건 적이 없는데도 그는 자신의 희망을 루비오에 투영시키고 있는 셈이다. 소속 정당을 갖고 있는 유권자들은 정책 검증 단계에 이르면 이성적 판단보다는 결국은 감성적 선호도가 지지 후보를 결정하는 잣대가 되는 것 아니냐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한편, 다른 후보들도 이날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를 하루 앞두고 막바지 유세전을 펼쳤다. 이날 저녁 7시 맨체스터 중심부 ‘버라이존 와이어리스 아레나’에서 열린 트럼프 유세에는 5천여명이 참가했다. ‘트럼프 거품’이 꺼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지만, 아직까지 뉴햄프셔에서 트럼프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앞서, 이날 낮 1시부터는 맨체스터 도심에 위치한 팰리스 극장에서 샌더스가 1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막바지 세몰이를 했다.
<시엔엔> 방송 등 최근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민주당에선 샌더스가 클린턴 후보를 최소한 두자릿수 이상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으며, 공화당에서도 트럼프가 루비오 등 다른 후보들을 두배 가량 앞서고 있다. 이에 따라 양당 모두 샌더스와 트럼프의 1위 여부보다는 2위 후보들이 얼마나 격차를 좁힐 수 있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맨체스터(뉴햄프셔주)/글·사진 이용인 특파원yyi@hani.co.kr
루비오 후보와 악수하는 이용인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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