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현지시각) 미국 아이오와에서 실시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부인 제인이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화답하고 있다. 디모인/AP 연합뉴스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1일(현지시각) 치러진 민주당의 첫 대선 코커스(당원대회) 결과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가운데 어느 한쪽에게도 일방적 승리를 안겨주지 않았다. 하지만 ‘0.35%포인트’ 차이라는 박빙의 결과가 보여주듯, 클린턴은 수치상으로 이겼지만 되레 쫓기는 신세가 됐고, 샌더스는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쫓기는 힐러리
총동원령…8년전 악몽 피했지만
남편 빌 클린턴 등 결과에 실망
‘이메일 스캔들’도 대선 길 부담
추격자 샌더스
양극화 해소·월가개혁 내세워
40%p 지지율 격차 따라잡아
흑인·히스패닉 표심잡기가 숙제
다음 뉴햄프셔는 샌더스 우세
3월1일 ‘슈퍼화요일’ 지켜봐야
일단 클린턴 입장에선 최악의 결과는 피할 수 있게 됐다. 그는 2008년 아이오와 경선에서 신예 버락 오바마 후보에게 일격을 당하면서 ‘대세론’이 흔들렸다. 클린턴은 이런 ‘2008년의 악몽’을 피하기 위해 이번엔 아이오와 승리에 전력을 기울였다. 선거자금을 집중 투입하고,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 가족들도 선거운동에 총동원했다. 클린턴 진영에선 지난 주말을 넘기면서 샌더스의 상승세를 저지했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샌더스의 기세는 만만치 않았다. 그는 아이오와의 1681개에 이르는 모든 기초선거구에 자원봉사자 조직을 두고 풀뿌리 선거운동을 펼쳤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빈부격차가 커지고, 상위 소수층으로 부가 집중되는 미국 사회의 현실에 분노한 민주당 유권자들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정치혁명’을 통한 소득 불평등 해소, 경제금융 권력인 ‘월가 개혁’을 외치는 구호에 열광적으로 호응했다.
샌더스가 클린턴과 동률을 이룬 것만 해도 어찌 보면 ‘기적’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해 5월 대선 출마를 선언할 때만 해도 그의 지지율은 5%에도 못 미쳤다. 클린턴과의 지지율 차이는 40%포인트가 넘었다. 스스로를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칭하며 구름 관중을 몰고 다니는 그에게 ‘공산주의자’라는 딱지도 붙었다. 그러나 그는 인지도 열세와 자금력 부족을 열성적인 풀뿌리 조직의 지원과 기성 질서에 대한 ‘혁명’을 구호로 돌파해왔다.
샌더스는 젊은층으로부터 압도적 지지를 받기는 했으나 2008년 당시 오바마 후보만큼의 바람을 일으키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코커스에 참여한 민주당원은 17만1109명으로, 2008년의 23만9872명에 못 미쳤다. <뉴욕 타임스>는 에디슨 리서치의 조사 결과를 인용해, 첫 코커스 참가자의 비율이 40% 정도였는데, 2008년의 57%에 못 미쳤다고 분석했다.
상승세를 타고 있는 샌더스와 조직 및 자금력에서 여전히 우위에 있는 클린턴의 대결은 앞으로 민주당 경선이 장기전으로 갈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샌더스는 9일 치러지는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예비경선)에선 탄탄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의 승부는 27일 치러지는 사우스캐롤라이나와 12개 주에서 무더기 경선이 실시돼 22%의 대의원이 걸려 있는 3월1일 ‘슈퍼 화요일’까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클린턴 입장에선 샌더스의 정책들이 민주당 유권자들에게 호소력이 있는 것으로 입증된 만큼 좀더 ‘좌클릭’한 정책을 내놓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 ‘월가와 유착된 기득권 이미지의 클린턴은 중산층의 편이 아니다’라는 유권자들의 불신을 극복할 수 있다. <뉴욕 타임스>는 클린턴과 남편 빌 클린턴이 이번 아이오와 선거 결과에 상당히 실망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클린턴의 참모들은 남은 경선에 대비해 선거운동 직원을 추가 채용하고 선거운동을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무장관 재직 시절 국가기밀을 개인 이메일로 주고받았다는 이른바 ‘이메일 스캔들’ 논란도 클린턴에겐 암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 국무부는 그가 사용한 이메일에 22건의 1급 기밀이 들어 있었다고 최근 인정했다. 이메일 스캔들 논란이 커질 경우 그의 본선 경쟁력을 우려하는 민주당 유권자들이 샌더스 쪽으로 등을 돌릴 수 있다.
샌더스는 젊은 엘리트 백인층을 끌어오는 데는 성공했지만, 앞으로 남은 경선은 샌더스에게 유리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아이오와와 뉴햄프셔는 백인이 90% 안팎을 차지하고 있지만, 흑인과 히스패닉계 민주당 유권자들이 많은 사우스캐롤라이나와 ‘슈퍼 화요일’을 맞는 주들은 클린턴 쪽에 쏠려 있다. 소수 인종의 마음을 사지 못하면 슈퍼 화요일을 기점으로 상승세가 꺾일 수도 있다.
디모인(아이오와)/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