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해소안된데다
한국정부 배려 흔적 짙어
‘비핵화 어젠다’ 우선 강조
한국정부 배려 흔적 짙어
‘비핵화 어젠다’ 우선 강조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북한 김정은 후계 구도를 사실상 인정하면서도 이를 명시하는 데 주저하고 있다. 미국이 김정은 체제를 언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김 위원장 사망 이후 곧바로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인 김정은을 새 영도자로 공식화했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김 위원장 사망 공식 발표 이후 지금까지 후계자인 김정은의 이름을 특정해서 거명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북한 주민 위로 성명이나 백악관, 국무부 대변인의 브리핑에서도 일관되게 ‘김정은’이란 이름 대신, ‘북한의 새 리더십’이라는 추상적인 통칭을 쓰고 있다.
김정은이 북한의 권력을 실질적으로 장악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것이 표면적 이유지만, 한국 정부를 배려하려는 흔적이 짙어 보인다. 20일 한국이 발표한 북 주민들에 대한 위로 담화엔 ‘새 리더십’ 같은 표현조차 없었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20일(현지시각) “앞으로 북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이 쉽지 않아 미 행정부가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한 언행을 유지하고 있다”며 “그리고 한국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보조를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의 김정은 체제로의 이행에 대해 아직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이 먼저 김정은 체제를 명시적으로 인정할 경우, 이는 이명박 정부를 힘들게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 사망에 대한 클린턴 장관 명의의 조의 성명에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때와는 달리 ‘애도’(condolence)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것도 한국 정부와의 교감의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국도 당시보다 훨씬 심각한 핵문제 외에도 천안함·연평도 사건으로 인해 북한과의 관계가 꼬여 있는 이명박 정부의 입장을 고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미국은 향후 북한의 새 지도부가 김정은을 중심으로 형성될 것이라는 점은 부인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 지도자가 누구냐’라는 공식 인정 여부는 뒤로 물린 채, ‘비핵화’ 어젠다를 더 강조하고 있다. 국무부는 20일 브리핑에서 “북한의 새 지도자가 비핵화의 방향으로 나라를 이끌어가기를 희망한다”며 “우리는 북한이 이웃국가들은 물론이고 특히 한국과 더 나은 관계를 구축해가기를 바라며, 북한 주민들의 권리를 존중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이 사실상 김정은 체제를 인정하면서, 김정은 체제에 바라는 기대와 희망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셈이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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