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시간에 번진 화재로 잿더미로 변한 하와이제도 마우이섬의 라하이나 시가지가 11일 폐허가 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라하이나/로이터 연합뉴스
하와이제도 마우이섬 화재 사망자가 12일(현지시각) 현재 93명으로 집계되면서 이번 산불은 하와이주 역사상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간 재난으로 기록됐다. 이런 가운데 하와이가 자랑하는 재난 경보 사이렌이 단 한대도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부실 대응이 재난을 키웠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조시 그린 하와이 주지사는 대형 산불이 마우이섬 북서쪽 관광 도시 라하이나를 잿더미로 만든 지 사흘 뒤인 이날까지 89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그는 수색 작업이 이어지면서 사망자는 더 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마우이섬에서 실종 신고가 접수된 인원은 1천명가량이다. 마우이 카운티는 이후 사망자가 4명 늘어난 93명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큰불이 삽시간에 도시를 집어삼킨 이번 산불의 피해 상황을 고려하면 희생자 수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화재 사망자 규모는 하와이가 1959년 미국의 주가 된 이래 가장 크다. 이전까지는 1960년에 61명의 목숨을 앗아간 지진해일(쓰나미)이 최대 인명 피해를 기록한 재난이었다. 하와이가 공식적으로 주가 되기 전 준주 지위를 지녔을 때인 1946년에는 쓰나미로 158명이 숨진 바 있다. 그만큼 화산섬인 하와이는 쓰나미 피해가 가장 큰 걱정거리였기 때문에 이번 화재는 더 뜻밖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또 마우이섬 화재 인명 피해 규모는 지난 100년간 미국에서 발생한 화재를 통틀어 2018년 캘리포니아주 패러다이스에서 85명이 숨진 사례를 뛰어넘어 최악을 기록하게 됐다.
이번 불로 주택을 비롯한 건물 2207채가 파괴됐다. 집을 잃은 이재민이 4500여명이다. 라하이나를 복구하는 데만 55억달러(약 7조3천억원)가 들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피해도 상당하다. 19세기 초 하와이 왕국 수도였으며 오래된 건물이 즐비한 라하이나의 도심과 그 주변 역사지구는 미국 국립역사기념물로 지정된 곳이다. 이번 산불로 하와이의 역사를 간직한 도시가 지도에서 사라지게 됐다.
생존자들과 미국 언론들은 불길이 강풍을 타고 급속하게 퍼진 탓도 있지만 옥외 사이렌이 전혀 작동하지 않은 점도 피해를 키운 요인이라고 지목하고 있다. 하와이는 쓰나미에 대비해 철저한 옥외 사이렌 경보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내세워왔다. 하와이제도 전체에 400개, 마우이섬에는 80개 사이렌이 설치돼 있다. 하지만 지난 8일 화재 발생 뒤 불길과 연기가 라하이나 등을 휩쓸 때까지 사이렌은 단 한대도 울리지 않았다.
라하이나에서 40년을 살았다는 로빈 리치는 자신의 두 친구는 집에 설치된 화재경보기 덕에 목숨을 건졌다며 “옥외 비상 사이렌은 매월 작동 테스트를 받지만 이번 화재 때 울리지 않았다. 경고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죽은 것을 생각하면 정말 화가 난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할머니와 함께 불길을 피한 더스틴 칼레이오푸는 시비에스 인터뷰에서 “집 창문으로 연기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차에 탔을 때는 이웃집 뜰이 불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경보도 듣지 못한 채 입고 있던 옷만 걸치고 빠져나왔다고 했다. 주민들은 사방 800m까지 소리가 퍼지는 옥외 사이렌이 울렸다면 갑자기 들이닥친 불길을 피하려고 바다로 뛰어들어 목숨을 잃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와이 비상관리국은 텔레비전, 라디오, 휴대전화로 재난 발생을 알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강풍과 화재 탓에 전기가 끊기고 휴대전화도 불통되면서 이런 경보가 제대로 전파되지 않았다. 앞서 마우이섬 소방서장은 8일 오후 허리케인이 일으킨 강풍을 타고 불길이 급속히 번지는 바람에 대피령 발령 담당자들에게 통지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해명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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