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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금리 오르자 ‘독’ 돼버린 미 국채…은행 미실현 손실만 806조원

등록 2023-03-13 15:32수정 2023-03-13 18:11

‘긴축통화’ 고수 연준까지 나서 자금 공급 확대
안전자산 재무부 채권, 은행 재무 불안하게 해
12일 미국 뉴욕의 시그니처은행 본사 직원이 커피를 들고 들어가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12일 미국 뉴욕의 시그니처은행 본사 직원이 커피를 들고 들어가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재무부 등이 폐쇄된 실리콘밸리은행과 시그니처은행에 대해 예금 지급 전액 보장을 약속한 것은 사태의 조기 진화를 위한 승부수로 풀이된다.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뱅크런)의 재발 방지를 위해 휴일에 부랴부랴 이런 조처를 내놓을 만큼 금융시장 불안이 확산될 가능성에 노심초사 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예금 전액 보장과 은행권 추가 자금 제공이 뼈대인 이번 대책은 현지시각 12일 저녁에 발표됐다. 이튿날 미국 금융시장 개장을 앞두고 증시 급락이나 또 다른 뱅크런을 막으려고 강력한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예금 보장 한도 변경은 연방예금보험공사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고 재무부 및 연준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세 기관이 이를 전격적으로 합의해 3자 공동성명을 내놓았다. 기준금리 인상 등 통화 긴축에 열심이던 연준이 은행에 대한 자금 공급을 늘리겠다고 한 것도 사태의 심각성을 반영한다.

뉴욕시 금융 당국도 시그니처은행 폐쇄 발표 전 세 연방 기관과 긴밀히 협의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책은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증시 개장 직전에 발표됐는데, 먼저 장이 열리는 곳부터 투자 심리를 안정시키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으로 가장 우려됐던 것은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기업들의 연쇄도산 등 실물경제에 대한 악영향이었다. 실리콘밸리은행은 스타트업 등 법인 고객을 주로 상대해 기업 예금주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예금 보장 범위를 넘어서는 예금액이 95%에 달해 스타트업들에게 큰 피해가 예상되고 있었다. 현금을 구하지 못하면 직원 급여도 못 주거나 도산에 내몰리게 된다.

재무부 등은 대책을 내놓으면서도 금융위기로 전이 가능성은 매우 낮게 보는 태도를 유지했다. 재무부·연준·연방예금보험공사 등은 공동성명에서 “미국 은행 시스템은 회복력이 있고 기반이 탄탄하다”고 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이날 <시비에스>(CBS) 인터뷰에서 미국 은행들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지불 능력이 강화됐다며 “정말 안전하고 자본력이 충분하다”고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초저금리 시대에 조금이라도 큰 수익을 얻으려고 사놓은 재무부 채권 등 장기채가 고금리 시대에는 독이 돼, 규모가 작은 지역 은행들을 중심으로 추가 붕괴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가파른 금리 상승으로 채권 가치가 떨어졌고, 새로 발행되는 채권 값은 더 싸다 보니 은행들이 보유한 채권 수요는 더욱 줄고 있다. 연방예금보험공사는 이에 따른 미국 은행들의 미실현 손실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6200억달러(약 806조원)라고 밝혔다.

마틴 그루언버그 연방예금보험공사 사장은 최근 한 행사에서 “지금 금리 환경은 은행들의 자금 조달과 투자 전략에서 수익성이나 위험 수준에 극적 영향을 미친다”며 “미실현 손실은 예상치 못한 유동성 수요를 맞출 수 있는 은행들의 능력을 약화시켰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은행처럼 예금 지불을 위해 채권을 싸게 팔아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되면, 손실이 실제화할 뿐 아니라 예금주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해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옐런 장관도 <시비에스> 인터뷰에서 재무부 채권을 많이 보유한 은행들이 금리 상승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안전 자산’의 대명사인 미국 재무부 채권이 은행들의 재무 구조를 불안하게 만드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는 셈이다.

금융시장에서는 불안 심리 확산 자체가 나쁜 시나리오를 현실화한다는 ‘자기 실현적 예언’이 작동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도 미국 당국이 크게 신경 쓰는 대목이다. 한 벤처 금융인은 하루에 420억달러가 빠져나간 실리콘밸리은행 뱅크런의 시작에 대해 “사람 많은 극장에서 불도 안 났는데 ‘불이야’라고 소리친 격”이라고 <시엔비시>(CNBC) 방송에 말했다. 그는 “모두가 달려나가는 과정에서 기름 램프를 넘어뜨려 난 불이 건물을 태운다면 처음에 소리친 사람은 ‘거봐라, 내가 뭐라고 했냐’라고 말할 것”이라고 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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