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의 거주지가 압수수색당하고 이틀 뒤인 지난 10일 뉴욕 트럼프타워를 나서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비밀 자료 무단 반출 혐의에 따른 거주지 압수수색으로 위기에 몰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지자들을 배경으로 한 위협과 발뺌, 음모론으로 연방수사국(FBI)에 맞서는 ‘정치적 기술’을 다시 발휘하고 있다. 국면 전환과 위기 탈출을 위해 조기 대선 출마 선언을 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5일 <폭스 뉴스> 인터뷰에서 “(갈등의) 온도를 낮춰야 한다”며 “그러지 못하면 끔찍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자신의 측근들이 법무부와 접촉해 “우리가 도움이 될 만한 것은 무엇이든 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밝혔다. 지난 8일 마러라고 리조트 압수수색으로 자신의 지지자들이 흥분해 실제 폭력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경계한 것이다. 연방수사국은 압수수색 뒤 사법기관들에 대한 공격 위협이 증가했다며 경보를 발령했고, 연방수사국 신시내티지부에 무장한 채 침입하려던 이가 추격전 과정에서 사살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지금 일어나는 일에 매우 화가 나 있다”며 “(미국인들은) 또 다른 사기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도 내놨다. 자신이 패한 2020년 대선은 부정선거였는데, 연방수사국이 자신을 처벌하려는 시도까지 한다면 지지자들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한 셈이다. 또 마러라고 압수수색을 “대통령 집에 침입”한 “기습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온도를 낮추자’는 말은 자신을 더 건드리지 말라는 메시지인 셈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연방수사국이 (압수수색 때) 그들이 원하는 무엇이든 심어놨을 가능성이 있다”며 단골로 쓰는 음모론도 꺼내들었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조작된 증거를 가져다 놨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앞서 전직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반출할 수 없는 비밀 자료 11건이 마러라고에서 발견된 것으로 나타났는데, 법률적 책임이 불거질 경우에 대비해 이런 음모론으로 미리 복선을 깔아놓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며 대응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압수수색 직후에는 관련 기관의 협조 요구에 철처히 응했는데 수사를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뒤에는 백악관에서 반출하는 자료들은 각각의 지시가 없어도 비밀 해제되도록 자신이 ‘스탠딩 오더’를 내렸기에 마러라고에는 비밀 자료가 있을 수 없다는 새로운 주장을 폈다. 14일에는 변호인의 비밀 유지 의무 및 대통령의 정보 비공개 특권으로 보호받는 자료들을 압수당했다며 즉각 반환하라고 연방수사국에 요구했다.
여러 방법으로 방어전을 펴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는 전격적 대선 출마 선언이라는 카드가 남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가디언>은 이번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그의 조기 대선 출마 선언이 논의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대선 후보라는 지위가 공식화되면 연방수사국이 기소 결정을 내리는 데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라는 것이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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