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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거만한 마초’ 쿠오모, 아버지 후광·케네디가 혼맥으로 도약해 ‘성추행 몰락’

등록 2021-08-11 11:29수정 2021-09-29 13:58

[후(who)스토리]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가 지난해 월스트리트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AFP 연합뉴스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가 지난해 월스트리트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AFP 연합뉴스

여성 11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사퇴 압박을 받아온 앤드루 쿠오모(63) 미국 뉴욕 주지사가 14일 뒤 물러난다고 10일 밝혔다. 30년 동안 중앙 무대에서 탄탄대로를 걸으며, 1년 전만 해도 ‘코로나19 위기의 영웅’으로 대통령 선거 출마까지 거론됐던 인사가 몰락했다.

쿠오모는 1983년부터 1994년까지 뉴욕 주지사를 3번 연임한 마리오 쿠오모의 아들이다. 마리오는 민주당에서 대표적인 이탈리아계 정치인으로, 대선 출마까지 거론되던 거물이다. 뉴욕 포덤대와 뉴욕주립대 법과대학원을 졸업한 쿠오모는 아버지의 최측근 참모로 정계에 발을 내디뎠다.

아버지는 그에게 후광이자 그늘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후광으로 출셋길을 열었으나, 그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평생 몸부림쳤다. ‘철인 왕’이라고 불린 지적인 면모의 아버지와는 달리, 쿠오모는 야심만만하고 무자비한 ‘거리의 투사’로 부상했다. 정적들에 대해서는 보복도 서슴지 않았고, 사석에서도 직설적인 언행으로 상대를 불편하게 했다. 그가 공격적이고 냉혹한 면모를 보인 것은 자신의 독립성을 과시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을 것이라고 <뉴욕 타임스> 등 미국 언론은 분석했다.

쿠오모는 아버지가 대선 출마 의사를 접은 뒤인 1993년 빌 클린턴 행정부에 들어가 자신의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주택도시개발부 차관보로 시작해 1997년에는 장관을 지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최대의 정치적 자산을 얻었다. 1990년 미국의 최대 정치 명문가인 케네디 가문의 딸 케리 케네디와 결혼을 한 것이다. 존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으로 법무장관을 지내고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다가 암살당한 로버트 케네디의 딸이다. 쿠오모는 이 결혼으로 민주당 내 최대 정치 기린아로 부상했으나, 15년 뒤 이혼했다.

2002년에는 뉴욕주로 돌아와 주지사 출마를 시도했으나,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패했다. 하지만 2006년 뉴욕주 검찰총장 선거에서 승리해, 뉴욕 주지사로 가는 길을 닦았다. 그는 주검찰총장 때 전임 주정부와 주지사들의 부정부패, 월가 금융가에 대한 수사로 정치적 입지를 쌓았다. 그의 공격적인 수사로 2010년 데이비드 패터슨 당시 주지사가 재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2011년, 뉴욕 주지사 선거에서 대승한 그는 민주당의 진보적 의제들을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추진했다. 그는 동성결혼 합법화, 시간당 최저임금 15달러로 인상, 직장 성폭력에서 여성 보호 정책 등을 입법화했다. 노동자, 소수자, 젠더 문제에서 뉴욕주를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곳의 하나로 만드는 데 힘쓴 그가 성추행 문제로 사임한 것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정치적 위상은 지난해 코로나19 위기로 급상승했다. 그는 파워포인트를 사용한 일일 브리핑으로 뉴욕주의 코로나19 대처 현황을 주민들에게 상세히 전달했고, 미국민을 사로잡았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코로나19 위험성을 과소평가하며 손을 놓고 있는 상황과 대비되면서 유력 대선후보로 급부상했다.

쿠오모의 동생은 <시엔엔>(CNN)에서 주요 앵커로 활약하는 크리스 쿠오모다. 크리스는 당시 형과의 인터뷰에서 “당신의 업무 수행에서 얻는 이런 칭찬들 때문에 대통령에 출마할 생각이 있는 것이냐?”라고 질문했다. 그는 지난해 상반기, 주지사로 87%의 지지를 얻었다. 쿠오모를 도널드 트럼프에 맞설 민주당 후보로 내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았다.

쿠오모는 비록 대선에 출마하지 않았지만, 주지사 4선 출마는 거의 확실했다. 그러나 뉴욕 주검찰이 그의 자화자찬 자서전을 수사하면서 정치적 추락이 시작됐다. 쿠오모가 코로나19 위기에 대처하는 지도력에 대해 쓴 책이 “주정부 직원 동원” 혐의를 받았다. 쿠오모가 주검찰총장 시절 주지사를 향해 칼날을 겨눈 것이 자신에게도 똑같이 돌아온 것이다. 더욱이 뉴욕주가 노인요양시설의 코로나19 사망자 수를 축소·은폐한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쿠오모는 사면초가에 몰렸다.

하지만 결정타는 성폭력이었다. 사실 쿠오모의 마초적인 언행은 지속적으로 입길에 올랐다. 급기야 지난 2월 전직 보좌관 등이 그의 성추행 행위를 폭로했다. 뉴욕주 검찰은 지난 3일 쿠오모가 뉴욕 주정부의 전·현직 직원 11명을 성추행했다고 발표했다. 러티샤 제임스 뉴욕주 검찰총장은 지난 3일 수사보고서에서 쿠오모 주지사가 여성들에게 원치 않는 키스 등 신체 접촉을 하고 부적절한 발언들을 했다고 자세히 기술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 등은 “쿠오모 주지사가 사퇴해야 한다”고 밝혔고, 뉴욕주 의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쿠오모 주지사 탄핵소추 움직임이 일었다.

쿠오모 주지사는 이날 사퇴를 발표하면서도, 자신의 행위가 성추행으로 간주돼선 안 되고 이번 조사가 “정치적 동기를 가진 조사”라는 기존 태도를 유지했다. 피해 직원들에게는 “너무 가깝게 생각했다. 불쾌한 마음이 들게 했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영국 일간 <가디언>은 쿠오모의 몰락을 “인과응보”라고 평했다. 젊은 여성들이 의원으로 등장하는 정치 환경의 변화에서도 여전히 마초적인 정치력만을 행사하면서, 거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언행을 보인 것에 대한 인과응보라는 지적이다.

쿠오모 주지사가 물러나면 남은 임기는 캐시 호컬(62) 부지사가 이어받는다. 그는 뉴욕주 첫 여성 주지사가 된다. 정의길 선임기자,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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