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공방으로 이어질듯…확정 판결후 국내 자산 가압류
검찰이 31일 영국계 헤르메스 펀드를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벌금 73억원에 약식기소함으로써 국내 사법 사상 처음으로 외국 거대 펀드를 형사 처벌하는 선례를 남겼다.
이번 조치는 국내에서 시세차익을 노리며 경영권까지 위협하는 여러 외국계 펀드들에 대한 `경고' 의미를 가지며 향후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면 사법처리와 관련된 가이드 라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헤르메스는 이날 국내 홍보대행사를 통해 "한국 검찰의 기소를 수용할 수 없다"며 정식 재판 청구 가능성을 밝혀 공방은 법정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 `73억 벌금' 법정공방 불가피 = 헤르메스 리처드 버네이스 회장과 토니 왓슨 CEO 등 경영진 4명은 삼성물산 주가조작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자 지난달 초 직접 방한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들은 "헤르메스 펀드는 투기자본이 아니라 건실한 장기 투자 자본으로 당시 자료를 총괄 검토한 결과 주가조작은 아닌 것으로 확신한다"며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했다.
검찰은 6개월 가까운 수사 끝에 로버트 클레멘츠 당시 헤르메스 총괄운영책임자의 `단독 범행'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지만, 헤르메스측이 `사기적 부정거래'라는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법적 공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기소중지된 클레멘츠씨는 당시 피고용인이었고 우리 정부가 영국이나 이스라엘과 사법공조 협약을 맺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사법처리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다만 영국 금융당국이 헤르메스에 대한 조사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돼, 그에 대한 법적 제재 여부는 영국 금융당국의 조사 결과에 따라 영국의 법과 규정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헤르메스가 검찰의 처분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하면 법원은 청구를 받아들일지를 결정하게 된다. 현재로서는 이번 사건이 쟁점별로 양측 주장이 뚜렷하게 엇갈리는 데다 벌금액도 커서 재판으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양벌규정에 따라 법인이 기소됐기 때문에 법인 대표가 법정에 출석하지 않아도 변호사를 통해 재판이 가능하다.
헤르메스는 현재 국내에 5억 달러 규모를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확정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가압류가 불가능하다. 최악의 경우 확정 판결 전 헤르메스가 국내 자산을 모두 처분하고 시장에서 빠져나가면 벌금형 집행도 어려워진다.
검찰 관계자는 "헤르메스가 대외 신인도 관리에 무척 신경쓰고 있기 때문에 벌금을 낼 것으로 기대한다"며 "만약 정식 재판을 청구한다면 법정에서 유ㆍ무죄를 가릴 수밖에 없다"
◇ 검찰, e-메일ㆍ공모관계 수사 총력 = 국내에 지점도 없는 외국계 펀드를 수사하게 된 검찰은 관련자들에게 주가조작 의도가 있었는지 또 실제 어느 정도 공모가 이뤄졌는지를 조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자칫 외국 자본의 국내 시장 투자를 위축시킨다는 비난을 우려, 클레멘츠씨 등 핵심 관련자들의 e-메일과 통화 내용 등 압수할 수 있는 대상은 모두 확보했다. 외국계 펀드의 주가조작 혐의를 수사한 전례가 없던 터라 이 문제는 작년 국정감사에서도 논란이 됐다.
한 여당 의원은 금감원 국정감사에서 "헤르메스는 죄가 있다면 지배구조가 취약한 삼성물산 주식을 사고 판 것밖에 없다. 금감위와 금감원이 삼성의 지배구조를 조직적으로 보호해주기 위해 헤르메스에 오히려 괘씸죄를 적용한 사건"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주범으로 지목된 클레멘츠씨를 직접 소환하지 못한 건 한계로 지적되지만, 그 는 2차례에 걸친 e-메일 조사 때 본인이 직접 답변해달라는 요구를 무시하고 변호인을 통해 해명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은 국내외 기관, 펀드에 대한 차별 논란이 제기될 것을 우려해 인터뷰를 주선한 국내 모 증권사 전직 직원 김모씨를 7차례 소환하는 등 강도 높게 조사하는 열의도 보였다. 이광철 기자 minor@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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