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을 깨고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국제 금융시장이 향후 불확실성의 한가운데에 놓였다. 당장 금융시장이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12월 미국 금리 인상 여부도 불투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문가들은 트럼프 당선이 신흥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애초 시장에선 트럼프 당선 땐 단기적으로 달러 약세를 예상했었다. 정책을 떠나 트럼프라는 ‘비정상적’ 인물이 당선될 경우 달러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이 확정된 9일 달러 가치는 선진국 통화로 안전자산인 엔화·유로화 등보다는 상대적 약세를 나타낸 반면,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커지면서 신흥국 통화인 페소화와 원화 등에 강세를 보였다. 특히 대미 경제 의존도가 높으면서 트럼프 당선으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파기 위기에 몰린 멕시코 페소화 환율은 현지시각 9일 새벽 달러당 20.14페소로 전날 대비 10% 가까이 급등(달러 강세)해 거래 중이다. 올초 달러당 17페소 수준이었던 멕시코 통화가치는 트럼프 지지율 상승에 반비례해 하락해왔다.
단기적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 당선이 유력하다고 보고 미리 주가가 올라 있었던데다,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의 금리인상 속도 등 시장이 그간 설정한 전제들을 재점검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일단 금융시장 혼란이 길어질 경우 시장에선 12월 인상을 기정사실로 했던 미국의 금리 변경이 미뤄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통상 금리 인상이 미뤄지면 풍부한 글로벌 유동성으로 인해 주식시장엔 호재로 받아들여진다. 지난 6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미국 금리 인상이 미뤄질 것이란 전망에 신흥국 증시 중심으로 회복세를 탔던 것이 그 예다. 하지만 브렉시트는 유럽경제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아 신흥시장의 매력이 두드러졌지만, 트럼프 당선은 신흥시장에 악재여서 금리 인상이 미뤄진다 해도 신흥시장에 글로벌 자금이 들어올지는 미지수다.
결국 단기적으론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커져 일본 엔화는 물론 달러화까지 선진국 통화가치가 강세를 보이고, 미국 국채 등 선진국 국채 가격이 오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신흥시장에선 외국인 자금이 이탈해 통화가치가 절하되고 주가 등이 하락할 수 있다. 위험자산 회피 심리로 유가 상승도 제약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안전자산인 금값은 오를 것으로 예측된다. 이날도 트럼프의 당선이 확실시된 오후 2시10분께 금값이 전거래일보다 4.8% 뛴 온스당 1337.38달러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금융시장 혼란은 예상보다 일찍 가라앉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종우 아이비케이(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정치적 이벤트로 인한 시장 충격은 길게 가지 않는다. 오늘은 예상과 다른 결과에 시장이 크게 움직였지만, 이르면 내일부터도 반등이 가능할 것”이라며 “미국은 대통령 개인이 아닌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나라이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보장돼 있기 때문에 금리 인상 속도에도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반면 금융시장이 단기적 충격에서 벗어나도 신흥국엔 중장기적으로 이로울 게 없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수출 위주의 신흥국 경제엔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트럼프의 예측불가능한 ‘입’도 신흥국 금융시장에 불안 요소가 될 것으로 본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트럼프 당선 때 실제 신흥국 경제 영향은 멕시코 등 몇몇 국가에서 국지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금융시장에선 트럼프의 신흥국에 대한 예측 가능하지 않고 거친 언사 때문에 재임 기간 내내 신흥국에 대한 투자가 꺼려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달러의 중장기적 방향성에 대한 예측은 엇갈렸다. 트럼프 공약 중 감세와 투자로 인한 재정적자 확대와 보호무역주의 기조는 달러 약세를 점치게 하는 요인이지만, 기업에 세제혜택을 통해 역외 달러를 회수하겠다는 공약은 달러 강세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지나친 통화가치 하락을 꺼리는 전통적 공화당의 기조대로 금리 인상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진다면 달러 강세가 촉발될 가능성도 있다.
김효진 기자 ju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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