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선풍적인 인기를 끈 모바일 게임 ‘포켓몬고’의 출시 배경엔 닌텐도에 끊임없이 모바일 게임 출시를 촉구한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자리 잡고 있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27일 자본시장연구원 최순영 연구위원은 ‘포켓몬고 사례를 통해서 본 최근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일본시장 진출 확대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모바일 게임 출시를 기피하고 있던 닌텐도의 등을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오아시스 매니지먼트’가 밀어줬다고 설명했다. 닌텐도는 포켓몬·슈퍼마리오·소닉 등 다양한 인기 캐릭터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자사 콘솔 게임 시장 잠식을 우려해 모바일 게임을 내놓지 않고 있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재무적 목적으로 투자하는 일반 펀드와 달리 지분투자에 따른 의결권을 활용해 자사주 매입·구조조정·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해 수익을 내는 펀드다.
세계적 게임회사인 일본 닌텐도는 2000년대 후반 들어 주력 사업인 콘솔 게임 시장이 포화되고 모바일 게임으로 고객이 이탈함에 따라 2012~2014년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등 장기간 성과가 부진한 상태였다. 이 때 홍콩에 기반을 둔 오아시스 매니지먼트가 닌텐도 지분을 사들였다. 2013년 오아시스 매니지먼트는 닌텐도에 약 4000만달러를 투자해 1% 미만의 소수지분을 확보한 뒤 주주 자격으로 2013~2015년 모바일 게임 출시를 촉구하는 3차례의 공개서한을 닌텐도 최고경영자(CEO) 앞으로 보냈다. 오아시스 매니지먼트의 닌텐도 지분은 1%도 안 됐지만, 당시 닌텐도의 주요 주주는 스테이트 스트릿 뱅크(11.35%)와 제이피 모건 체이스 뱅크(9.78%) 등 미국계 기관투자자들로 이 헤지펀드는 이들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통해 지분율보다 더 큰 영향력 행사가 가능했다.
결국 닌텐도는 외부 압박을 수용해 증강현실 전문 게임회사 니안틱과 합작으로 포켓몬고 모바일 게임을 지난 7월6일에 내놨고, 출시 뒤 닌텐도 주가는 열흘 사이 2.2배 뛰어 시가총액이 2조372억엔에서 4조5008억엔으로 증가했다.
최 연구위원은 오아시스 매니지먼트 외에도 2011년 이후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일본 시장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라고 분석했다. 최 연구위원은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성장 한계에 봉착한 기업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기업가치 제고에 기여하는 경우도 있지만 낮은 지분율로 과도한 영향력 행사, 단기적 투자성향으로 기업·타주주의 장기적 이익을 훼손할 수도 있다”며 “한국 기업도 사내 유보금이 많고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예정 등 지배구조 개선이 기대돼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활동하기에 우호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국내 기업의 수익성·생산성 제고를 위한 자체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김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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