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한진해운이 31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1조2000억원에 이르는 회사채 투자자들의 손실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반면 대한항공 등 한진그룹 내 다른 계열사들은 한진해운 지원 부담을 덜었다는 시장의 판단에 따라 주가가 오히려 올랐다.

한진해운이 공시한 올해 반기보고서를 보면, 지난 6월 말 기준 회사채 발행 잔액은 1조1891억원이다. 이 가운데 사모회사채가 7681억원, 공모회사채가 4210억원이다. 사모회사채 가운데 4300억원 규모(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는 신용보증기금이 지급보증을 섰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원금을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공모회사채는 산업은행·지역농협 등 기관투자자들이 주로 보유하고 있으며, 개인투자자 보유분은 645억원가량이다. 앞으로 법정관리 절차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기업 청산이 거론되는 만큼 회사채 투자자들은 원금의 10%도 돌려받지 못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한진해운의 회사채 채무불이행(디폴트) 신호도 가시화했다. 이날 한진해운은 법정관리 신청으로 2011~2013년 발행한 회사채 4종 4260억원 상당에 대해 기한이익이 상실됐다고 공시했다. 기한이익 상실이란 채무자가 원금이나 이자 지급을 연체하는 등 신용위험이 높아진 데 따라 채권자가 만기 전에 자금 회수에 나서는 것으로, 사실상 채권 부도를 의미한다. 이날 나이스신용평가는 한진해운의 신용등급을 CCC에서 D(채무불이행 상태)로 낮췄다.

다만 금융당국은 회사채 투자자 손실이 시스템 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적다고 봤다. 김재호 금융감독원 신용감독국 팀장은 “회사채 발행 당시에는 투자적격(A등급)으로 불완전판매 소지가 적었고, 오랜 구조조정 과정에서 투자 위험을 알고도 채권을 사들이는 등 손바뀜이 많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규모 투자자 분쟁 소지는 적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진해운 주식은 지난 30일 전 거래일(29일)보다 24.16% 하락한 1240원에서 거래가 정지됐다. 법원에서 회생절차 개시 결정이 날 경우 관리종목 상태로 거래가 재개되고, 기각(청산) 결정이 날 경우엔 상장폐지 심사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진해운을 법정관리로 보낸 한진그룹의 다른 계열사들과 현대상선의 주가는 오히려 반사이익을 누렸다. 한진그룹의 대한항공·한진칼 등은 한진해운에 대한 추가 지원 가능성이 사라지면서 주가가 상승했다. 대한항공은 30일(6.87%), 31일(1.45%) 이틀 연속 주가가 올랐고, 한진칼도 30일 주가가 5.85% 올랐다. 이지윤 대신증권 연구원은 “한진해운에 대한 지원 리스크가 소멸되었다는 안도감을 넘어 한진그룹이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시작했다는 점이 가장 큰 투자 포인트로 작용했다”고 짚었다. 현대상선 주가도 정부가 한진해운의 우량자산을 인수하도록 추진한다는 소식에 31일 25.57%나 급등했다. 김효진 기자 jul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