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지난 8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진해운 사옥.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우리나라 원양 해운업의 시초로 전 세계 바다를 누벼온 ‘수출 한국’ 대표기업 한진해운이 끝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파산6부(재판장 김정만)는 2일 한진해운에 대한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폐지를 결정했다. 재판부는 “주요 자산 매각이 마무리된 만큼 회생절차를 중단하고 이달 17일 파산을 선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진해운을 실사한 삼일회계법인은 지난해 12월 재판부에 “청산가치가 계속기업으로 존속할 때의 추정 가치보다 높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법원이 최종 파산을 선고하면 남은 자산을 매각한 뒤 매각금액을 채권자들에게 배분하는 청산절차를 밟게 된다.
한진해운은 1977년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국내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선사로 설립했다. 이듬해 중동항로 개척, 1979년 북미 서안 항로와 83년 북미 동안항로 개설 등으로 해운업 역사를 써내려갔다. 현대상선보다 1년 늦게 뛰어들었지만, 1940년대에 설립된 ‘국내 1호 선사’ 대한상선(대한선주)을 88년에 인수해 유럽항로를 넘겨받으며 국내 1위 선사로 부상했다. 1992년에는 국적 선사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돌파했고, 미국 시애틀과 롱비치 등 주요 항만에 전용터미널을 세워 사세를 급속히 확장했다. 이어 1995년 거양해운과 97년 독일 디에스아르(DSR)-세나토 등 굴지의 선사들을 인수·합병하는 등 공격적으로 덩치를 키워 세계 7위의 강자로 성장했다.
그러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파고를 피하기 어려웠다. 이미 2006년 조중훈 회장의 셋째 아들 조수호 회장이 작고하고 경영 경험이 전무한 부인 최은영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때부터 위기가 시작됐다. 특히 해운업이 좋았던 시절의 낙관적 전망을 믿고 10년 이상 장기 용선료 계약을 맺은 게 큰 화근이었다. 금융위기로 운임이 급락했는데도 이 계약에 따라 시세보다 5배나 비싼 용선료를 매년 수천억원씩 부담해야 했다. 급기야 2013년 2423억원 영업손실 등 3년 연속 적자를 내며 침몰 위기에 처했다.
2014년 최은영 전 회장의 시아주버니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바통을 넘겨받아 위기 돌파에 나섰다. 대한항공 등 그룹 주력 계열사가 1조2천억원대의 자금 수혈에 나섰다. 하지만 쇠락의 길을 되돌릴 수 없었고, 부채는 2015년 5조6000억원에 달하는 등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지난해 4월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에 들어갔고, 채권단의 자구안 요구를 끝내 충족하지 못해 자금 지원이 중단되자 그해 9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한진해운 인력 중 700여명은 현대상선과 삼라마이더스그룹의 에스엠(SM)상선에 고용이 승계되거나 채용됐고, 미국 롱비치터미널과 미주노선 등 일부 자산도 두 해운사에 매각됐다.
조계완 허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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