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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증권

ELS 상담의 추억…분석 못하는 상품을 팔아야 할까

등록 2016-01-21 19:41수정 2016-01-21 21:03

현장에서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울상이다. 주가 폭락으로 투자 원금을 까먹을 가능성이 커져서다. 이 상품에 물려 있는 투자금액은 37조원이 넘는다. ‘투자의 세계’에서 손실은 병가지상사라고 치부하기엔 석연치 않은 대목이 있다. 판매사들의 불완전 판매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2014년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때였다. 회사의 주거비 지원을 받아 세종특별자치시로 파견 근무를 갈 터여서 살고 있던 집의 전세보증금을 수년간 굴려야 했다. 시중은행은 물론 저축은행 정기예금도 1년 수익률이 3%를 넘지 않았다.

상담을 받을 생각으로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 시중은행을 찾았다. 사정을 설명하자 명패에 ‘○○○ 차장’이라고 적힌 상담 직원은 “막 나온 따끈따끈한 상품이 있다”며 설명서를 꺼냈다. 이 은행의 계열사가 발행할 예정인 주가연계증권이었다. 기초자산은 홍콩H지수와 유로스톡스50(EuroStoxx50)지수였고, 최대 수익률은 7%였다. 기초자산 가격이 만기 때 45% 하락하면 원금을 잃는 조건도 붙어 있었다. 상담 직원은 투자 수익률에 노란색 형광펜으로 동그라미를 쳤다. 원금 손실 발생 조건에도 밑줄을 그었다.

막 나온 따끈한 상품 있다며
최대 수익률 7%엔 ‘동그라미’
원금손실 조건에는 밑줄 ‘쫙’

홍콩증시·중국경제 상황 묻자
‘3년 안에 반토막 나겠나’ 반문
고객이 위험에 노출된 사이에
은행은 수수료 확정수입 챙겨

이 직원은 정작 시장 상황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듯했다. 홍콩H지수의 추가 상승 여력 또는 하락 가능성 등을 가늠할 수 있는 기본 지표인 밸류에이션(이익 대비 주가 수준)을 말하지 못했다. 주가 흐름의 기본이 되는 중국 경제에 대해서도 꿀먹은 벙어리였다. “중국이 계속 성장하는 나라잖아요”“3년 안에 주가가 반토막 나겠어요?”라는 ‘평범한’ 말만 반복했다. 계속 미덥잖은 표정을 짓자 “저도 이엘에스 해요. 요즘 이엘에스가 대세거든요”“(전세보증금) 전액 투자가 망설여지면 자산 배분 차원에서 일부만 이엘에스에 넣어요”라고 했다. 결국 저축은행 여러 곳에 보증금을 나눠 맡기는 걸 택했다. 그 지점에선 이후 부지점장까지 나서 3번이나 투자 권유 전화를 해왔다.

주가연계증권은 옵션 계약과 헤지 거래를 동반하는 파생금융상품이다. 특히나 이 은행의 직원이 권유한 상품의 기초자산은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홍콩H지수다. 몇 장 짜리 상품 설명서에 이런 복잡한 상품 구조를 담기도 어렵거니와 판매하는 직원이 상품에 내재한 위험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런 상품을 일반 고객에게 판매하는 게 과연 적절할까. 특히 여윳돈이 아니라 수년 뒤 반드시 써야하는 전세보증금이 투자 재원인 고객에게 사라고 권유할 수 있는 상품인지는 의문이다.

김경락 기자
김경락 기자
저금리로 예대마진이 급격히 떨어지는 상황에서 주가연계증권 판매수수료(투자금액의 0.5~1.0%) 수익에 눈이 먼 영업 행태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은행은 이를 ‘수익 다변화 전략’이라고 포장한다. 고객은 잘 알지도 모르는 위험에 노출된 사이 은행은 확정된 이익(수수료 수입)을 챙겼다. (기자가 상담한 이 은행은 지난해 2월 국내 은행 최초로 주가연계증권 판매 잔액이 10조원을 넘어섰으며, 지난해 상반기 판매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두배 이상 늘었다.)

세종/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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