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지카드 인수 우선협상 신한지주 선정
“엘지카드 인수전의 최대 수혜자는 신한이 아닌 채권단”이라고 금융권은 입을 모은다. 지난 2년6개월 동안 수차례에 걸친 감자와 증자, 관치금융 논란을 거치며 이뤄진 엘지카드 회생의 ‘열매’가 고스란히 채권단의 몫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엘지카드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의 김종배 부총재는 이날 신한금융지주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다고 발표하면서 “매각가격에 대해 110% 만족한다”며 흡족해했다. 금융권에서는 산업은행을 비롯해 은행과 보험회사 등 엘지카드의 채권단의 평균 주당 매입가격이 3만5천~3만6천원임을 감안할 때, 전체 매각차익이 3조~3조2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카드대란의 주범으로 ‘미운오리 새끼’ 취급을 받은 지 불과 2년6개월 만에, 7조2천억원짜리 화려한 ‘백조’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표정관리=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대회의실서 김종배 산업은행 부총재(오른쪽)가 공식발표를 통해 신한금융지주를 엘지카드 우선협상대상자로, 하나금융을 예비 우선협상자로 선정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돈잔치’에 가려진 그늘=채권단의 흐뭇한 표정을 씁쓸히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다. 과거 카드사태로 쌈짓돈을 날려버린 엘지카드 소액주주들, 아직도 카드빚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채무불이행자들, 휴짓조각이 돼 버린 우리사주를 뒤로한 채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됐던 엘지카드 직원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국내 1위 카드사였던 엘지카드는 2003년부터 길거리 카드 발급으로 상징되는 무리한 영업과 연체율 급등, 에스케이글로벌 사태 등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나락으로 떨어졌다. 당시 유상증자와 채권 발행 등을 통해 1조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하며 위기를 넘기는 듯 했지만 그해 11월 채권단에 2조원의 긴급자금 지원을 요청해야 할 처지에 몰렸고, 급기야 현금서비스 중단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후 정부의 개입 속에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위탁경영을 맡게 되면서 채권단의 추가지원과 엘지그룹에서 분리, 채권단 출자전환, 추가 유동성 지원 등 숨가쁜 ‘수술’이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채권단은 물론이고, 개인투자자들 역시 2002년 4월 엘지카드 상장 이후 1조원 가량의 막대한 투자손실을 봤다.
엘지카드 직원들의 사정은 더 딱했다. 카드사태 이후 불과 1년6개월 만에 비정규직을 포함해 6552명의 직원들이 해고됐다. 엘지카드 한 직원은 “지점 단위로 매주 몇명씩 해고 할당량이 내려왔고, 출근 뒤 이번주엔 누구누구가 대상이라는 말 때문에 견딜 수 없이 힘든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당시 회사에서 대출을 받아 우리사주를 샀던 직원 대부분이 빚에 허덕이며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했고, 일부는 퇴직금으로 빚을 갚고 쓸쓸히 회사를 떠났다.
너무 비싼 가격 ‘후폭풍’은 없나=엘지카드 노동조합은 이날 “지나치게 무리한 인수비용은 다시 고스란히 엘지카드의 장기적인 성장을 가로막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시장에서 보는 적정한 가격보다 지나치게 비싸, 인수자와 피인수자가 함께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금융권에서는 인수가격이 이처럼 치솟은 이유를 두고, 엘지카드 자체의 매력도 있겠지만 입수 경쟁자들 스스로가 엘지카드 채권단이라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엘지카드를 인수하면 그 자체로 좋고, 탈락하더라도 인수가격이 높을수록 보유주식의 가치 상승으로 큰 이익을 남기게 돼 ‘베팅액’을 높이는 데 부담이 적었다는 분석이다. 입찰에 참여한 농협, 신한, 하나금융은 엘지카드 지분을 각각 15%, 7.14%, 4.17% 갖고 있다.
석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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