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기업을 대표하는 인물인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와 코로나19 사태 이후 기술주 상장지수펀드(ETF)로 이른바 대박을 기록한 아크 인베스트먼트의 캐시 우드 최고경영자가 최근 들어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강력한 긴축은 실수이며 디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긴축을 멈춰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또한 채권시장의 거물 중 하나인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캐피탈 최고경영자 역시,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이유로 0.75~1%포인트 인상 전망이 대세인 9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만 인상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영향력이 큰 기업과 투자업계 거물들의 발언이다 보니 언론들도 앞다퉈 이러한 주장을 소개하고 있다.
이런 상황 판단은 학계와 시장의 많은 전문가들의 판단과는 큰 차이가 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경제를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많은 이들은 높은 물가의 고착화를 우려하고 있다. 미국 연준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들도 같은 입장이다. 어느 정도 경기 침체를 감수하더라도 인플레이션을 잡는 게 우선이라는 시각을 밝히고 있으며, 실제로 큰 폭의 금리 인상을 진행 중이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올해 초 0~0.25%에 불과했던 기준금리를 이미 2.5%(상단 기준)까지 끌어 올렸다. 9월에도 3회 연속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투자자로서는 일부 업계 큰손의 주장과 중앙은행들의 입장 차이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다수의 전문가와 달리 이들이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주장하며 현재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중앙은행들이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대표적으로 작년부터 꾸준하게 디플레이션 압력을 주장해 온 캐시 우드의 주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새로운 기술 혁명, 특히 인공지능이 경제 전반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계속 낮추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를 좋은 디플레이션 압력이라고 지칭해왔다. 실제로 이런 환경은 물가 하락에 대한 경제 주체들의 기대를 자극해 통화 유통 속도를 떨어뜨리고, 완화적 통화정책의 효과를 제한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강도 높은 긴축이 경제에 큰 타격을 미칠 수 있다는 추론은 충분히 가능하다.
우드는 지금의 물가 상승 압력이 상당 부분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일시적 병목 현상에 의한 것이고 조만간 되돌려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역시 타당한 측면이 있는데, 두 가지 이슈 모두 원자재부터 완제품까지의 생산 차질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생산 차질은 기업들에 재고 축적 압박을 가한다. 비상 시기에 원재료를 조달하지 못할 위험, 수요가 살아났을 때 생산 차질로 대응하지 못할 위험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가수요가 인플레이션을 자극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반대로 가수요가 사라졌을 때 강한 물가 하락 압력이 나타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디플레이션을 거론하며 각국 중앙은행이 조만간 긴축을 중단하고 완화적인 기조로 돌아설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때 너무 이른 판단이라 생각된다. 앞서 이들이 거론한 기술 발전에 따른 디플레이션 압력은 장기적이고 점진적으로 진행되어, 한번 형성된 기대 인플레이션을 바로 떨어뜨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드를 비롯한 많은 이들과 최고의 경제 전문가가 모여 있는 연준이 지난해 물가 전망을 크게 틀린 것 역시 경제에 내재되어 있는 물가 상승·하락 압력의 크기와 시차를 적절하게 가늠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기대 인플레이션 형성을 예측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 아닐까?
경제뿐 아니라 세상 모든 일이 과해지면 되돌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최근 제기되고 있는 디플레이션론은 분명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탈세계화와 자원의 무기화라는 구조적 인플레이션 압력 역시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다. 새로운 공급망의 형성이나, 자원 의존도를 줄이고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이 오히려 물가를 끌어내릴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시점이다. 연준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의 강도 높은 긴축이 이같은 점들을 고려하지 않은 선택이라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기술 발전이라는 디플레이션 압력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는 고물가에 당황하고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 따라서 아직은 디플레이션론과 금리 인하 필요성을 주장하며 공격적으로 기술주를 매수하고 있는 캐시 우드를 따르기보다, 기대를 넘어서는 긴축과 유동성 축소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감안해 방어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유리해 보인다.
SK증권 지식서비스부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