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목이 ‘대지’로 돼 있잖아. 공시지가가 19만8천원인데 평당으로 하면 60만원, 여기서 2배로 준다는 거야. 확정은 아니고, 아무튼 거기서 위로금 30만원 정도 더 올려준다고 하더라고.”
“‘절대농지’라 우리는 공시지가가 5만8700원인데 그럼 도대체 얼마를 보상받는 거야?”
지난달 24일 찾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독성리의 한 화훼농가에 삼삼오오 모인 농민들은 ‘반도체 공장’으로 인한 농지 수용을 앞두고 보상금 수준에 망연자실한 상태였다. 원삼면의 고당리·독성리·죽능리 3곳은 2019년 3월 에스케이(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설 부지로 공식 발표됐고, 용인시청의 최종 승인(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계획 승인 고시)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1990년대 후반 용인 수지에서 임대농으로 화훼농사를 짓다가 2003년 절대농지 800평을 사서 정착했다는 50대 농민 ㅈ씨는 “3기 신도시 사람들 만나서 ‘우리 15만원 보상받아요’ 하면 다 웃더라”며 씁쓸해했다. 하남 교산 새도시에 수용되는 항동의 표준지 공시지가는 밭의 경우 20만~30만원 수준이지만, 독성리는 6만~8만원대로 3분의 1 수준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시행자인 ‘㈜용인일반산업단지’의 관계자는 “보상 수준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주민들과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용인 원삼에는 반도체와 같은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헐값에 대체되는 절대농지가 있다. 저렴하게 수용해 막대한 개발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절대농지가 투기세력을 유혹하는 땅으로 전락한 비극을 들여다봤다.
■ 농지에도 신분이 있다 현장의 농민들은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5년 농지보전법에 도입된 절대농지라는 용어를 아직도 쓰지만, 1996년 농지법이 새로 제정되면서 이 말은 ‘농업진흥지역’이라는 말로 대체됐다. 농업진흥지역은 평야처럼 계획적으로 정비된 우량농지가 집단화되어 있는 곳인데, 정부는 식량안보와 식량주권을 위해 농업 행위만 가능한 농업 전용 토지를 보호하기 위해 농업진흥지역을 설정한다.
문제는 개발행위에 제한이 많아 지가가 저렴한 농업진흥지역의 속성이 외려 투기에 이용된다는 점이다. 토지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지에스앤제이(GS&J) 인스티튜트의 박석두 연구위원은 “산업단지든 신도시든 개발할 때 농업진흥지역을 수용하면 개발차익이 더 많이 난다”며 “특히 농업진흥지역을 해제한 곳 인근에 있으면 개발 압력에 노출되는데 수도권 농업진흥지역 내 농지는 다른 지역 농지와는 신분이 다르다”고 말했다.
실제로 농업진흥지역이 ‘보호’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대규모 공공개발에 편입되는 일이 잦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보고서(<농지의 체계적 관리를 위한 농업진흥지역 지정·운영 개선 방안>, 2019)를 보면, 2004~2008년 대규모 개발사업에서 전체 편입 농지 가운데 농업진흥지역 농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미군기지 이전(95.8%)에 이어 산업단지(88.6%)가 가장 높았다. 기업도시(75.1%), 행정복합도시(71.0%), 2기 새도시와 같은 택지개발(52.6%)에서도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싼 일반농지보다 농업진흥지역 농지 편입 비중이 절반을 넘었다.
김포한강새도시, 김포장기지구 등 농업진흥구역을 해제한 공공주택지구 개발이 활발했던 김포의 경우, 현재 농업진흥지역 내 농지가 ‘농업용’이 아닌 ‘투자용’으로 전락한 상태다. 3기 새도시 추가 후보지로 입길에 오르는 김포 고촌에는 절대농지 500평이 13억원까지 나온 매물도 있다. 인터넷에는 ‘농업진흥지역 해제 토지를 주목하라’, ‘농업진흥지역(절대농지) 실거래 현황분석’ 등 농업진흥지역 토지를 ‘투기상품’으로 소개하는 글이 버젓이 유통되는 실정이다.
■ 투기 좌표가 된 ‘백년 먹거리’ 2019년 3월 국토교통부 수도권정비위원회가 용인 원삼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용인시의 산업단지 신청을 승인하자, ‘문재인 정부의 수도권 규제완화 신호탄’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반도체는 바이오, 미래차와 더불어 문재인 정부가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꼽는 산업이다.
특히 평택 고덕(삼성전자), 화성 동탄(삼성전자), 이천 부발(에스케이하이닉스) 등 대기업의 반도체 공장이 줄줄이 들어선 경기도는 반도체 산업단지 개발 압력이 높은 상태다. 국토부는 지난해 12월 향후 20년의 수도권 개발 방향을 정한 ‘제4차 수도권 정비 계획’을 확정·고시하면서 5개 개발 유형 중 하나로 ‘스마트 반도체 벨트’를 제시하기도 했다. 만일 개발정보를 미리 입수해 농업진흥지역 내 토지를 저렴하게 매수하면, 나중에 산업단지 개발로 큰 개발이익을 남길 수 있는 ‘투기판’의 그늘이 형성된 계기다.
실제 ‘에스케이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이 들어선다’는 개발 계획은 사실상 용인 원삼을 ‘투기 좌표’로 만들었다. 한국부동산원 지가변동률 자료를 보면, 2018년 경기도 평균(4.42%)을 밑돌던 원삼면(3.03%)과 백암면(2.03%) 지가상승률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로 발표된 2019년엔 껑충 뛰었다. 원삼면(15.88%)과 백암면(17.14%) 모두 전년 대비 5~8배가 넘는 지가상승률을 보였다. 백암면은 2019년 거래건수가 1578건으로 2018년 706건에 건줘 2배로 늘어났다. 원삼면은 반도체 클러스터 발표가 있었던 3월에 바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됐고, 인접한 백암면도 8월에 같은 규제가 적용됐으나 지가 상승을 막을 수 없었다.
■ 농민과 투기꾼 구분 안 되는 딜레마 산업단지 개발 과정에서 농지가 투기의 희생양이 되기란 쉽다.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가 자유로워 농지가 사실상 투기 수단으로 이용되는 구조라면 특히 더 그렇다. 2006년부터 한국농어촌공사에 농지를 임대위탁할 경우 상속받은 비농업인은 3㏊까지, 농사를 그만두는 이농 비농업인은 농지를 무제한 소유할 수 있게 됐다. 2018년 기준 임차농지는 전체 농지의 45%, 임차농가는 전체 농가의 50%로, 농지개혁 이전인 1947년 임차농지 비율 60%, 임차농가 48% 수준으로 퇴행했다는 자료도 나온다.
특히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대다수 대규모 산업단지는 국토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를 통해 ‘공익사업’으로 인정받아 강제수용도 일부 허용되는 사실상 ‘공공개발’로 추진되지만, 민간자본을 조달해 추진되는 탓에 투기세력의 집중 공격목표가 됐다. 100% 공공개발보다 보상 수준이 높아서다. 보상을 노린 가짜 주택인 ‘벌집’이나 가짜 영업장인 ‘세트장’ 등 투기가 극성을 부리는 이유다. 실제 지난달 24일 독성리 곳곳에는 가건물 형태의 빈 건물이 들어서 있었고, 독성리 한 마을에는 세종시 스마트국가산업단지에 등장한 ‘벌집’과 유사한 형태의 가건물이 두세 채 들어서 있었다. 반도체 클러스터 추진 과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공람공고일 3월29일 이후에 건축행위를 한 것에 대해서는 보상 대상이 안 되는데 집도 짓고 공장도 짓고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어떤 지역은 세대수가 50세대에서 120세대로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주민대책위 관계자는 “공공기관이 하면 법과 원칙에 따라 할 수밖에 없는데 민간이 하니까 돈도 더 줄 수 있고 간접보상을 더 줄 수도 있어서 토지주 입장에서는 그나마 다행”이라며 “농민들 중에 허가 안 받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 위해서 이주자 택지 같은 간접보상을 늘리려고 하면, 외지인이나 투기꾼들까지 혜택을 보는 게 딜레마”라고 말했다.
용인/글·사진 진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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