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초 결혼을 앞둔 ㄱ씨는 직장이 가깝고 부모님이 계신 서울 마포 일대에서 전세 신혼집을 알아보다가 최근 ‘반전세’로 방향을 틀었다. 대단지라도 전세 매물을 찾기가 어려운데다, 어쩌다 중개업소로부터 연락받은 ‘귀한’ 전세 매물은 지난 상반기 전셋값보다 1억~2억원 이상 호가가 뛰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마음에 드는 역세권 신축 아파트였는데 집주인이 전용 59㎡(24평형) 전셋값을 8억원까지 불러 깜짝 놀랐다”며 “전세대출 부담이 너무 큰 탓에 어쩔 수 없이 월세가 조금 있는 반전세를 알아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의 노후 아파트에 사는 세입자 ㄴ씨는 내년 1월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최근 집주인으로부터 “실거주하겠으니 집을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ㄴ씨가 2019년 1월 전세금 2억8천만원에 입주한 1500가구 규모의 이 단지는 현재 전세 매물이 4건 나와 있고 전셋값은 3억8천만~4억원에 이르고 있다. 지난 7월에만 해도 3억원 선에 거래가 이뤄졌으나 석달 만에 1억원이 뛴 것이다. ㄱ씨는 “이 집을 전세로 얻을 때 전세대출 1억9천만원을 받아서 한달에 원리금으로 125만원씩 상환하고 있다”며 “같은 단지에 나와 있는 보증금 5천만원에 월세 120만원인 반전세 집으로 이사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이렇게 하면 미래를 대비한 저축은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앞날이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13일 부동산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서울시내 주요 아파트 단지마다 전세 매물이 극심한 품귀 현상을 빚는 가운데 전셋값이 고공비행을 하고 있다.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의 경우 3835가구 규모 대단지인데도 이날 현재 전세 매물이 고작 1건 나와 있는 실정이다. 이렇다 보니 전셋값은 그야말로 ‘집주인이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6월까지만 해도 6억원대였던 전용면적 59㎡ 전셋값은 현재 7억5천만원(매물 호가)까지 뛰어올랐다.
최근 서울 아파트시장을 덮친 전세난은 집값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감정원의 ‘9월 전국주택가격 동향’을 보면, 지난달 전국 주택(종합) 전셋값은 0.53% 상승해 2015년 4월(0.59%) 이후 5년5개월 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 수도권 전셋값은 0.65% 올라 8월(0.54%)보다 오름폭이 커졌고 서울도 상승폭이 0.41%로 높은 수준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주 국회에서 “전셋값이 단기간 많이 올라와 있는 상태이고 쉽게 떨어질 것 같지 않다”고 언급한 배경이다.
부동산업계에선 지난 7월 말 시행된 새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전월세 계약갱신청구권을 활용해 기존 주택에 눌러앉는 임차인들이 증가하면서 전세 물건이 부족해졌고, 집주인들은 희소성이 높아진 신규 전세의 보증금을 올리면서 전셋값이 뛰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특히 서울 아파트의 전세 거래량이 임대차법 개정 이후 빠르게 줄어드는 모습이 확인된다. 13일 기준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집계를 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꾸준히 1만건 안팎이었던 서울 아파트 월별 전세계약 건수는 8월 7815건으로 크게 감소하더니 지난달에는 올해 최저치인 5181건으로 떨어졌다. 이달은 13일까지 993건으로, 이런 추세라면 10월 거래량은 3천건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다만, 최근 보이는 전세난은 과거 아파트 전셋값이 연쇄적으로 올랐던 때와는 시장의 양상이 다르다는 점에서 좀 더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계약이 끝나는 전세 임차인들 대부분은 계약갱신청구권을 활용하고 있는 가운데, 집주인 입주나 본인의 직장 이전 등 사유로 불가피하게 이사를 해야 하는 임차인과 새로 집을 구하는 신혼부부 등 일부 수요층이 어려움을 겪는 게 최근 전세난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임대차법과 함께 정부의 강도 높은 ‘갭투자’ 억제(비거주 주택 대출 제한 등) 정책으로 인해 과거보다 전세가 귀해질 수밖에 없고 반대로 월세와 반전세(준전세) 등이 늘어나고 있지만 임차인들은 여전히 전세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 것도 전세난을 부추기고 있다.
이에 부동산업계에선 최근 전세 품귀 현상을 빌미로 집주인들이 시세보다 보증금을 지나치게 높인 ‘배짱 매물’을 내놓고 있어 되레 세입자의 주의가 필요하다는 경고도 나온다. 임차인이 너무 높은 가격에 전세계약을 맺는 경우 이후 자칫 ‘깡통전세’(집값이 전셋값보다 낮아져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주택)로 피해를 볼 우려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박원갑 케이비(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전세 물건이 워낙 귀하다 보니 세입자로서는 적당한 매물을 만났을 때 앞뒤 안 보고 계약을 서두를 수 있는데, 이런 경우 집값 하락 시에는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할 위험도 커진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종훈 진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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