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등하는 집값과 급증하는 가계부채 추이
“1인당 1100만원 빚…경제위기 징후” 경고
“집값안정 먼저…금리인상 신중해야” 주문
“집값안정 먼저…금리인상 신중해야” 주문
수도권 아파트값 거품과 가계 빚 급증이 한국 경제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경고음들이 나오고 있다. 또 만약 이번에 위기를 맞게 되면 1997년 외환위기처럼 특정 부문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 상황이 국민경제 전반에 걸쳐 장기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뒤따른다.
“97년엔 기업 부실, 이번엔 가계 부실”=엘지경제연구원은 외환위기 10년을 앞두고 17일 발표한 ‘아이엠에프(IMF) 위기 전후 한국 경제와 생활 여건 변화 보고서’에서 “올해 말 현재 한국 경제의 가장 두드러진 위기의 징후는 수도권 아파트 가격 거품과 이에 따른 가계 부채 급증”이라며 “97년엔 은행들이 외국에서 단기로 자금을 꿔 와 재벌 소유의 부실기업들에 쏟아부어 위기가 발생했는데, 이젠 그 역할을 가계가 떠안고 있다”고 짚었다. 위기의 출발점이 기업에서 가계로 바뀌고 있는 양상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2002년 이후 수도권 집값이 급등하면서 가계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서울 지역 아파트의 평균 평당 분양값은 2006년 1546만원으로 2002년(919만원)과 견줘 1.7배나 된다. 가계 빚을 보면, 올 9월 말 현재 잔액이 559조원이다. 국민 한 사람당 1100만원 가량의 빚을 진 셈이다. 특히 가계 빚 증가세는 집값이 크게 오른 지난 2년 사이 두드러져, 2005년엔 46조원이 늘었고 올해는 9월 말까지 38조원이 늘었다. 또 9월 말 현재 가계 빚 가운데 주택 담보대출이 215조원으로 3분의 1을 넘는다.
송태정 엘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동산 거품 붕괴와 이에 따른 자본 이탈로 위기가 현실화되면 투자와 소비 부진이 장기화되고, 만성적인 경기 침체로 대외 경쟁력이 약화되며 국제 신인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금융연구원도 이날 같은 가능성을 경고한 보고서를 냈다. 강종만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계 부실 억제 필요성과 방안’이라는 보고서에서 “최근 정부의 주택시장 안정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서울과 수도권 등 일부 지역의 주택 가격 급등과 금융회사의 주택 담보대출 급증으로 가계 대출 부실에 따른 금융위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부동산 거품 붕괴와 금리 인상으로 가계의 대출 상환 능력이 떨어지고 국내 경기마저 급속히 둔화된다면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집값 안정시켜 가계 부실 털어내야”=전문가들을 한국 경제의 위기 발생 가능성을 낮추려면 집값 안정을 통해 가계 부실을 털어내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이철용 엘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앞으로의 위기는 짧은 시간에 일시적으로 폭발하는 형태가 아니라 만성적인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며 “무엇보다 부동산 자산에 몰린 재원을 생산적인 실물 투자로 돌리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 과정에서 자산계층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서겠지만, 작지만 강한 정부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강종만 선임연구위원은 “올 7월 말 현재 국내 주요 은행들의 주택 담보대출 가운데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97% 이상이고 대다수의 금리 변경 주기가 3개월 이하”라며 “주택 담보대출의 장기화와 고정금리의 비중 확대를 통해 부실 가능성을 축소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또 급격한 금리 인상은 아파트값의 거품 붕괴를 유발할 수 있는 만큼 금리 인상은 주택시장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우성 기자 mogen@hani.co.kr
한국 경제에 다시 위기가 찾아오면 그 진원지는 집값 거품과 가계 빚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눈이 내린 17일 서울 남산 남쪽 산책로 전망대에서 바라본 해방촌 단독주택 너머로 높이 치솟은 용산구 주상복합아파트와 그 뒤편으로 여의도의 고층 빌딩들이 보인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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