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정부가 전세사기로 의심되는 임차인 피해 사례들을 무더기로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최근 주택 1139채를 보유한 채 사망해 임차인 수백명에게 피해를 끼친 일명 ‘빌라왕’ 관련 사례도 포함됐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9월 서울 강서구에 설치한 ‘전세피해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상담 사례 가운데 피해자가 다수이거나 여러 사람과 공모해 저지른 것으로 의심되는 건을 선별해 조사를 벌인 뒤 1차로 106건을 경찰청에 수사의뢰했다고 20일 밝혔다.
수사의뢰된 사례를 보면, 40대 임대업자 3명은 전세보증금을 받아 잔금을 치르는 방식으로 서울 소재 빌라를 여러 채 사들였다. 자기자본은 전혀 들이지 않았다. 이들은 보증금 반환이 어렵게 되자 모든 빌라를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법인에 팔아넘긴 뒤 잠적했다. 법인을 설립한 공모자와 함께 처음부터 ‘전세사기’를 기획한 것으로 의심된다.
서울에 빌라를 신축한 건축주 ㄱ씨는 브로커를 끼고, 시가보다 높은 보증금으로 전세 계약을 하면 수수료를 지급하기로 했다. 브로커는 ‘이자 지원금’을 지급한다는 미끼를 던졌고, 세입자들은 높은 보증금의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신축 빌라 건물은 재산이 없고 경제 활동도 거의 없는 ‘바지사장’ ㄴ씨에게 넘겼다. 주택 1139채를 보유한 채 사망해 임차인 수백 명에게 피해를 끼친 일명 ‘빌라왕’이 이런 바지사장 역할을 했다. ㄴ씨는 전세 기간이 만료된 세입자들에게 스스로 보증금을 회수하거나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집을 매입하라면서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이번 전세사기 의심 거래 106건에 연루된 법인은 10곳, 혐의자는 42명이다. ‘빌라왕’ 관련 사건도 16건이 포함됐다. 혐의자 중 임대인이 25명으로 가장 많았고, 공인중개사(6명), 임대인 겸 공인중개사(4명), 모집책(4명), 건축주(3명) 등이 뒤를 이었다. 거래 지역은 서울이 52.8%로 가장 많았고, 인천(34.9%), 경기(11.3%) 차례였다. 피해자는 30대(50.9%)와 20대(17.9%)가 대부분이었으며, 피해액은 171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국토부는 1차 수사 의뢰 사건에 포함되지 않은 나머지 피해 사례도 조사·분석해 추가로 수사 의뢰할 계획이다. 범정부 전세사기 특별단속은 내년 1월24일까지 진행된다. 국토부는 내년 2월 경찰청과 공동으로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후에도 전세피해지원센터에 접수되는 피해 사례를 분석해 2개월마다 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할 방침이다.
최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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