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아파트 전세 시장에 거래 절벽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출 규제에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등의 영향으로 전세 수요가 감소해서다. 전세 가격이 안정화 수순을 밟아가는 과정이란 의견과 매매-전세 가격 동반 급락으로 가는 불안한 중간 과정이라는 분석이 엇갈리고 있다.
14일 케이비(KB)국민은행이 작성하는 전세거래지수(서울 기준)를 보면, 지난 10월에 9.8로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지난 1월(18.9)의 절반 수준이다. 이 지수가 10을 밑돈 건 2008년 12월(4.3) 이후 처음이다. 이 지수는 일종의 중개업자의 심리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요즘 중개업자들은 서울 전세 시장에 금융위기 시절에 견줄 정도의 빙하기가 찾아왔다고 느낀다는 얘기다.
윤성열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강남구 지회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대치동 미도·은마아파트는 전세 매물이 20% 정도 증가했다. 하지만 반전세 매물 말고는 계약이 되지 않고 있다”며 “개포동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김한길 노원구 지회장도 “전세대출도 (보증금) 증액분만 해준다고 하니 찾는 사람이 없다. 매매, 전세 할 것없이 부동산이 올스톱 상태”라고 말했다.
이들은 거래 절벽을 부른 첫 요인으로 대출 규제를 꼽았다. 고가 전세의 경우 최근의 대출규제는 물론 2019년 12·16 대책 때 포함된 전세대출 규제가 시차를 두고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12·16 대책은 9억원 초과 주택 보유자가 전세를 얻을 때 대출 보증을 못 받게 했다.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인근 ㅌ부동산 관계자는 “고가 전세는 좋은 집 살고 싶은 사람들이 자기 집 전세 주고 옮기는 수요가 많은데, 주택 가격 상승으로 보유 주택이 전세 대출이 불가한 실거래가 9억을 초과하는 경우가 많아 움직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새 임대차법 시행에 따른 계약 갱신권 사용도 전세 수요 감소의 원인으로 꼽힌다. 강남구 삼성동의 ㅂ부동산 관계자는 “지난 4월부터 15억원에 나온 전세가 있는데 여태 나가지 않는다. 이사 안 가면 비슷한 가격대에 있을 수 있으니 움직임이 거의 없다”며 “임대차3법 이후 1년 동안 가격이 많이 올랐는데 수요가 안 받쳐주니 그 가격에선 소진이 안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전세 수요 증감의 주요 변수인 강남권 재건축 이주수요도 어느정도 소화가 된 상태다. 안현희 용산구 부지회장은 “두세달 전에는 반포에서 이주하는 수요가 용산에 많았는데 지금은 이주를 거의 다 마무리해 소강상태”라고 말했다.
거래절벽은 호가 하락으로 이어진다. 김진국 구로구 지회장은 “30평대 5억 불렀다가 4억5천까지 해준다고 해도 계약이 안 된다”며 “전세가격은 약세로 가는 쪽”이라고 밝혔다.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인근 ㅌ부동산 관계자도 “24평 최근 호가가 9억~9억5천만원에서 8억5천만~9억원 사이로 떨어졌는데 거래가 안된다”고 말했다.
호가 하락은 ‘숨고르기’일 뿐 ‘약세 전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박원갑 케이비(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11월은 비수기라는 점에서 숨고르기 양상으로 보면 된다”며 “내년 임대차3법 2년이 되는 7월이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거래량 감소만으로 시장 불안을 우려하기엔 이른 시점이란 얘기다.
진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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