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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업·재계

박덕흠 가족회사 ‘입찰담합 과징금만 12억’…무슨 일 있었길래

등록 2020-09-22 13:39수정 2020-09-22 19:39

단독 입찰 어려워지자 17곳 모아…과징금 59억원 대형 사건
공정위 “조직적·지능적 담합”…가족회사 혜영건설서 첫 모의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 당시 피감기관들로부터 공사를 특혜 수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국민의힘 박덕흠 의원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 당시 피감기관들로부터 공사를 특혜 수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국민의힘 박덕흠 의원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이 가족 회사를 통해 피감기관으로부터 수천억원대 공사를 수주했다는 의혹이 번지는 가운데, 2012년 자신이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회사를 동원해 수백억원 규모 공공시설 공사에 입찰담합을 주도했던 사실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박 의원의 가족회사 2곳 등이 가담한 불법 입찰담합은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놓은 의결서 분량만 34쪽에 이르고, 담합에 연루된 건설사가 17곳, 과징금이 59억원에 이르는 대형 사건이다. 당시 공정위는 “매우 조직적이고 지능적인 담합으로, 경쟁을 원척적으로 제한하고 정부예산을 낭비하는 입찰담합”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공정위 의결서(2012년 2월 ‘구의 및 자양취수장 이전 건설공사 2·3공구 관련 17개 건설사의 부당한 공동행위’)에 자세한 사정이 나와있다.

사건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시는 51억원 규모의 ‘구의 및 자양취수장 이전 건설공사’를 추진했다.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위치한 구의취수장이 왕숙천의 오염으로 수질이 나빠지자 물이 흘러들어오는 곳을 남양주 왕숙천 상류 부근으로 이전하기 위한 공사였다. 상하수도 건설업체인 대지종건, 재현산업과 함께 혜영건설이 먼저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낙찰을 장담할 수 없을 뿐더러, 높은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게되자 입찰 짬짜미를 하기로 사전에 모의했다.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의 ‘구의 및 자양취수장 이전 건설공사 2·3공구 관련 17개 건설사의 부당한 공동행위’ 의결서.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애초 담합을 계획했던 최아무개 대지종건 대표이사는 공정위 조사에서 “입찰에 참여할 만큼 수주실적이 부족해 단독 입찰이 어려웠고 (2012년 2월) 혜영건설과 재현산업 사장을 만나 공동수급체(입찰담합) 구성에 참여해달라고 부탁하자 (이들이) 흔쾌히 허락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첫 입찰담합 모의가 시작된 자리가 박 의원의 가족회사인 혜영건설 사무실이었다. 이어 입찰담합을 돕기 위한 ‘들러리’ 업체 15곳을 모았다. 이 가운데 혜영건설은 계열사 등의 도움을 받아 5곳을 끌어들였다.

혜영건설은 다시 자사 사무실로 대지종건 직원을 불러들여 사전에 조작된 투찰내역서가 담긴 이동식저장매체(USB)를 전달했다. 담합을 위한 입찰내역서가 담긴 이동식저장매체는 사흘간에 걸쳐 각 들러리업체에 차례로 전달됐다. 일부는 입찰 당일 퀵배달서비스를 통해 전달됐고, 들러리업체 쪽은 이 내역서대로 입찰가를 입력했다.

담합 결과는 짬짜미 업체들의 예상대로였다. 최종적으로 혜영건설이 2공구 사업을, 재현산업이 3공구 사업을 낙찰받았다. 이들 업체의 수주금액이 각각 287억원, 279억원에 이른다. 거액의 사업을 손쉽게 따낸 이들은 들러리 업체에게 공사계약금액 일부를 나눠줬다. 뒤에서 담합을 주도한 대지종건은 사업을 수주하지 않고, 대신 2·3공구의 지분을 각각 30%씩 갖기로 했다. 이같은 사실을 적발한 공정위는 “건설공사 입찰에 참여하면서 경쟁업체와 합의해 낙찰 예정자와 투찰금액을 결정하는 방법(입찰담합)으로 부당하게 경쟁을 행위를 다시 해서는 안된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59억2천만원을 부과했다. 박 의원의 가족회사로 알려진 혜영건설과 파워개발의 과징금만 12억원에 이르고, 사건을 주도한 대지종건과 재현산업에 각각 18억원, 13억4천만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들러리 구실만 했던 나머지 업체에도 6천만원에서 최대 1억2천만원까지 과징금이 매겨졌다.

이 과정에서 혜영건설이 계열사의 협력업체를 상대로 위력을 이용해 불법행위에 끌어들였음을 짐작케하는 대목도 있다. 손아무개 혜영건설 영업본부장의 공정위 진술엔 “당시 2공구는 혜영건설이 낙찰받고, 3공구는 재현산업이 낙찰받기로 합의했다. 대지종건에서 12개사의 협조를 받아왔고, 당사(혜영건설)는 계열관계와 친분관계에 있던 5개사의 협조를 이끌어냈다”는 내용이 담겼다. 불법행위인 줄 알면서도 불가피하게 입찰담합에 가담했을 정황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공정위도 “협조사들은 혜영건설의 협조요청에 따를 수밖에 없는 약자의 입장에 있었으므로 쉽게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확인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사건 이후 박 의원은 건설업체들이 ‘기간제한없이 3회 이상 과징금 처분’을 받으면 건설업 등록을 말소하는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에 강하게 반대했고, 등록 말소 가능 기간을 9년으로 낮춘 개정안 처리에 앞장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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