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준법체계 전반을 들여다보겠다는 목적으로 꾸려진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감시위)가 5일 공식 출범했다. 출범날 열린 첫 회의는 위원들이 저녁 식사도 거른 채 6시간 동안 진행됐다. 주로 감시위의 규정과 운영 원칙을 정하고 감시 대상인 7개 삼성 계열사의 보고를 받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그러나 기대를 모았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의 ‘양형 깎아주기’ 논란이나 삼성전자 노동조합 이메일 삭제 사건 등은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감시위를 이끄는 김지형 위원장(전 대법관·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은 회의 뒤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다음 회의부터 본격적으로 의제를 정해 논의한다”며 “노조 문제도 당연히 의제에 포함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유독 이 부회장의 ‘양형 깎아주기’ 논란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김 위원장은 “양형 문제는 재판부가 판단할 문제다. 우리가 다룰 이슈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재판장 정준영)가 감시위의 활동을 양형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뒤 감시위의 활동이 ‘이재용 봐주기’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회적 우려가 쏟아졌는데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입을 닫겠다는 선언으로 들렸다.
감시위의 이런 입장은 ‘삼성 개혁’이라는 스스로 내세운 존재 이유에 의문을 남긴다. ‘재판 간섭’은 해선 안 된다는 명분을 강조하다 외려 감시위의 독립성과 신뢰를 잃어버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감시위는 삼성이 감시위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자체) 누리집에 공개한다고 했다. 사회와 소통하면서 사회의 지지를 얻겠다는 취지로 이해된다”며 “그런데 출발 자체가 ‘감형의 지렛대’라면 과연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싶다”고 말한다.
감시위를 ‘지렛대’ 삼아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다면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예단하긴 조심스럽지만 더 이상 ‘효용 가치’가 사라진 감시위를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이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지원할지 의문이다. 과거 삼성이 쇄신책으로 만든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삼지모)이 해체됐던 전례를 떠올리면 이러한 우려가 드는 건 자연스럽다.
감시위가 사회적 지지와 신뢰를 통해 ‘지속가능한’ 활동을 이어가려면 ‘이재용 양형 깎아주기’ 논란뿐 아니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사기 사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문제, 노조 와해 사건 등 여전히 진행중인 삼성 관련 사건들에 대한 입장을 뚜렷하게 내놓을 필요가 있다. “감시위 출범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 감시위가 앞으로 벌어질 일만 책임지겠다는 건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다.” 2년 전부터 삼성 비판에 목소리를 내어 온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 말이다. 아직까지는 삼성에 비판적인 이들이 ‘공감’할 무언가를 감시위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송채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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