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진복을 입은 윤석열 대통령(왼쪽부터)이 12일(현지시각) 네덜란드 벨트호벤에 있는 에이에스엠엘(ASML) 본사를 방문해, 빌럼-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과 함께 클린룸에서 크리스토프 푸케 에에에스엠엘 최고사업책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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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를 국빈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반도체 동맹’을 성과로 내세우는 것에 대해 국내 반도체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 “잘하고 있는 기업의 밥상에 숟가락을 얹은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정부가 나서서 ‘반도체 동맹’을 언급한 것도 중국을 자극해, 국내 소재·부품·장비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우려도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3일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의 에이에스엠엘(ASML) 방문을 계기로 양국 정부·기업 간 구체적인 반도체 협력사업 추진에 합의했고, 이는 반도체 초미세화 기술공급망 구축을 통한 국내 첨단 반도체 경쟁력 확보에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12일(현지시각) 정부는 네덜란드와 △삼성전자-에이에스엠엘 차세대 반도체 제조 기술 알앤디(R&D센터) 설립 △에스케이(SK)하이닉스-에이에스엠엘 극자외선 노광장비 수소가스 재활용 기술 개발 △향후 5년간 반도체 전문 인력 500명 양성을 위한 전문 교육시설 신설 등 3건의 업무협약을 맺었다. 에이에스엠엘은 반도체 미세공정 작업을 돕는 노광장비 제조 부문에서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반도체 장비 업체다.
국내 반도체 업계 내에선 에이에스엠엘과 삼성·하이닉스의 협력은 오래전부터 논의된 사안으로 알려져 있다. 에이에스엠엘 입장에선 반도체 제조 강국인 한국에 알앤디 센터를 만드는 게 차세대 노광 기술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 삼성전자도 첨단 메모리 개발에 필요한 차세대 노광장비를 빠르게 확보할 수 있는 터라 이해관계가 맞는다. 에이에스엠엘이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 티에스엠시(TSMC)가 있는 대만에 올 하반기부터 생산공장·연구개발센터 건립 프로젝트에 약 300억대만달러(1조2558억원)를 투자하기로 결정한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삼성전자과 에이에스엠엘은 국내에 센터를 건립하는데 1조원을 내놓기로 했지만 각사가 책임지는 투자 금액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반도체 전문가는 “협력이 없던 기업 간 업무협약이라면 정부 역할이 크다고 봐야 하지만, 삼성·하이닉스는 에이에스엠엘에 투자하거나 장비를 많이 구입한 협력사다. 대통령 순방 결과물로 포장하는 건 알아서 잘하고 있는 기업들의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 격”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알아서 잘 나가는 반도체 제조업에 올라타 홍보 효과를 노리는 것보다 팹리스, 소부장(반도체 소재·부품·장비) 등 반도체 저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반도체 동맹’을 부각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노화욱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장은 “동맹이란 표현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의 칩4(한국·미국·일본·대만) 동맹같이 정치적 맥락으로 쓰일 수 있어 중국을 자극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 자료를 보면 올해 1~10월 국내에서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액은 6억9076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11억3057만달러)과 견줘 38.9% 감소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