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직무대행이 지난 7월6일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제1차 한일 산업협력 포럼’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전경련 제공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정경유착 비리에 연루돼 사회적 비난이 거셀 때마다 사과와 쇄신책을 반복해왔다.
김병준 회장직무대행은 지난 5월 “정경유착을 근절하겠다”며 혁신안을 발표했다. 산하 연구조직인 한국경제연구원을 흡수통합해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바꾸고 글로벌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탈바꿈한다는 게 혁신안의 뼈대였다. 정경유착을 차단하는 장치로 시민사회 인사들이 참여하는 윤리위원회 신설과 부당한 외압을 차단하기 위해 회원사에 대한 물질적·비물질적 부담을 지우는 사안을 사전 심의하는 제도도 혁신안에 포함됐다.
아직까지 혁신안이 시행된 건 하나도 없다. 오는 22일 총회에서 정관 변경을 거쳐 새 지도부가 꾸려지면 실천하겠다는 계획이다. 송재형 전경련 기획팀장은 “총회 이후 정식 조직과 회장 등 지도부가 갖춰지고 새로운 기업들이 들어오면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논의될 것”이라고만 말했다.
전경련은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2017년 3월에도 대국민 사과와 함께 쇄신안을 발표했다. 미르·케이(K)스포츠 재단의 모금 창구 노릇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해체론이 거세지자 내놓은 자구책이다. 당시 쇄신안의 주요 내용은 △한국기업연합회(한기련)로 개명 △회장단 회의 폐지 및 경영이사회 도입 △싱크탱크 기능 강화 등이다. 지난 5월 내놓은 혁신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단체 이름 변경은 1년여 뒤 공식적으로 포기를 선언했고, 회장단 회의를 대신할 전문경영인 중심의 경영이사회 구성도 없던 일이 됐다. 대신 경영위원회를 꾸렸지만 사무국의 보고를 받고 조언하는 협의체 구실에 그치고 있다. 이사회는 일년에 한두차례 총회 소집을 승인하는 형식 기구일 뿐이다.
여전히 주요 의사결정은 회장과 11명의 재벌 총수로 구성된 회장단에서 이뤄진다. 김병준 현 회장은 물론 류진 풍산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추대하는 결정도 회장단이 주도했다. 약속이 지켜진 건 4대 그룹 탈퇴 등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조직·예산 감축뿐이다.
전경련 쪽은 “기관명 변경과 이사회 구성 등 혁신안을 실행하려면 정관 변경을 해야 할 사안이 많았는데, 당시 정부에서 정관 승인을 해주지 않을 것으로 봤다”고 설명한다. 정부 눈치를 보다 쇄신 방안을 스스로 폐기하고 연명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쪽은 “전경련은 정경유착 비리가 터질 때마다 여러 쇄신안을 발표했지만 지금까지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 수가 없다”며 “제대로 된 반성과 쇄신 없이 또다시 ‘간판 바꿔달기’ 꼼수로 세만 불리려는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회승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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