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전국경제인엽합회 회장 직무대행이 18일 서울 영등포구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를 열어 전경련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이름을 ‘한국경제인협회’로 바꾸고 산하 연구조직을 흡수통합해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탈바꿈하겠다는 혁신안을 발표했다. 지난 3월 여권 출신 정치인을 임시 회장으로 영입한 뒤 위상 회복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김병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은 18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경련이 역사의 흐름을 놓치고 정부 관계에 방점을 두고 운영했던 과거의 역할과 관행에 대한 통렬한 반성을 토대로 혁신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우선 55년 동안 사용한 기관명을 ‘한국경제인협회’로 바꾼다. 이는 1961년 전경련을 처음 설립했을 때 사용했던 명칭이다. 기관명 변경은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전경련은 설명했다.
윤리헌장을 제정하는 한편 윤리경영위원회를 설치해 정경유착을 차단하는 거버넌스(의사결정구조)를 갖추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 위원회는 회원사에 대한 물질적·비물질적 부담이 되는 사안을 심의하는 구실을 한다. 김 회장은 “윤리위 구성은 비기업인 중심으로 꾸리고, 시민사회 출신 등 누가 봐도 신망 받는 이들을 모실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현재 산하 연구조직인 한국경제경연구원을 흡수통합해 글로벌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를 지향하기로 했다. 김 회장은 “전경련을 순수 연구단체로 개편하자는 논의도 있었지만, 잘못된 제도와 규제를 혁신하는 역할 또한 중요하다.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가치를 확산하는데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이번 쇄신안이 4대 그룹 재가입을 위한 ‘명분 쌓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정부의 재계 창구 구실을 다시 맡았지만, 현실적으로 4대 그룹 없이 재계 대표단체 노릇을 할 순 없다. 쇄신 노력은 4대 그룹이 복귀할 수 있는 명분이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김 회장은 4대 그룹의 전경련 재가입과 관련해 “상품(쇄신)이 좋으면 팔린다. 개혁을 잘하는 게 우선이다. 실무자 중심으로 (4대 그룹과) 상당한 소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경련은 김 회장 취임 이후 지난 3월 한일 정상회담과 4월 한미 정삼회담 때 잇따라 경제사절단을 꾸리는 등 정부와 재계를 잇는 창구 구실을 맡았다.
삼성·현대차·에스케이(SK)·엘지(LG) 등 4대 그룹은 전경련 재가입 여부에 대해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겨레>가 4대 그룹에 익명을 전제로 전경련 재가입을 검토하고 있는지 물었더니, ㄱ그룹은 “현재 재가입 여부를 윗선에서 논의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며 “(공식적으로) 답변할 수 없다”고 밝혔다. ㄴ그룹은 “전경련 혁신안은 국민적 공감대가 중요하고, 잘 이행되는지 지켜볼 계획”이라는 반응을 내놨다. ㄷ그룹은 “현재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고, ㄹ그룹은 “아직 검토하고 있지 않다. 공식적인 재가입 요청이 오면 검토할 계획”이라고 답변했다.
대통령실과 정부의 의중을 저울질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4대 그룹 관계자는 “친여권 회장을 영입한 효과인지는 모르겠으나 대통령실이나 정부가 재계와의 소통 창구를 조정하면 우리도 그에 맞춰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우찬 경제개혁연대 소장(고려대 교수)은 “국정농단 등 정경유착의 상징인 전경련이 다시 재계 대표단체로서의 위상을 되찾겠다는 행태나 권력의 눈치를 살피는 기업들 모두 퇴행적 모습”이라고 말했다. 전경련은 박근혜 정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당시 미르·케이(K) 스포츠 재단 등에 회원 기업들이 774억원을 출연하는 데 관여해 ‘정경유착’을 한 게 드러난 바 있다.
김회승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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