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 수요의 지속적 감소에 따른 수익성 악화에도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기조를 유지하기로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경계현 디에스(DS)부문장(사장) 등 반도체사업부 수뇌부와 워크숍을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
26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회장과 경 사장, 이정배 메모리사업부장(사장) 등은 지난 20일 서울 서초사옥에서 워크숍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사업부 일부에선 감산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이 회장이 감산을 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4월 초 1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하는 기업설명회(IR)에 앞서 다시 워크숍을 열 가능성이 커,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기조가 바뀔 가능성도 열려 있다. 삼성전자는 올 들어 공정 전환에 따른 자연적, 기술적 감산은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성장세가 꺾인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올해 들어 더욱 나빠지고 있다. 에스케이(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등 2·3위 업체들은 지난해부터 손실을 줄이고 시황 반등 시점을 앞당기기 위해 투자 축소와 감산에 돌입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지난 1월 워크숍에서 인위적 감산을 검토했지만 하지 않기로 했다. 2월에 이어 열린 3월 워크숍에서도 이런 정책 기조를 고수했다.
실적도 나빠지고 있다. 삼성전자·에스케이하이닉스의 올 1분기 실적 전망치는 분기 말이 다가올수록 떨어졌다. 이날 에프엔(FN)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 1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1조5천억원에 그치고, 에스케이하이닉스 영업적자는 3조5천억원에 달한다. 한 달 전 전망치에 견줘,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1조원가량 줄었고, 에스케이하이닉스는 영업적자가 1조원가량 늘었다.
이달 말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의 디램과 낸드플래시 재고 수준은 정상치(3.5주)를 크게 웃도는 15주 이상(신한투자증권)으로 한계 상황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삼성전자가 ‘비감산’ 유지를 택한 것은 출혈을 감수하면서도 경쟁력 유지와 후발주자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신영증권은 삼성전자 반도체부문이 1분기 4조1천억원 적자를 시작으로 2분기(-3조2천억원), 3분기(-1천억원)에도 적자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비감산을 이어가면 적자 터널은 이보다 더 길어질 수 있다.
에스케이하이닉스는 말 그대로 ‘발 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 됐다. 지난해 4분기부터 이미 영업적자에 돌입한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감산에 동참하지 않으면서 흑자 전환 시점이 더 멀어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자칫 2000년대 반도체 업체간 ‘치킨게임’이 다시 발생해 임직원 감원, 급여 삭감 등이 재현될 우려마저 있다. 더욱이 스마트폰·가전 등 다른 매출처가 있는 삼성전자와 달리, 에스케이하이닉스는 오롯이 반도체 매출에만 의존해 시장 상황에 따른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경희권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삼성전자가 감산을 하지 않으면 2·3위 업체인 에스케이하이닉스와 마이크론 등은 더 악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그나마 마이크론은 자금줄이 든든해, 에스케이하이닉스가 가장 큰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