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씨는 아버지(사망 당시 76)·어머니·부인·자녀와 함께 지난 설 명절 연휴기간 일본 북해도 삿포로와 비에이 지역을 일주하는 3박4일 패키지 여행을 떠났다. 도착 첫 날 호수공원을 둘러본 뒤 도시 외곽에 위치한 호텔에 도착해 온천을 하던 ㄱ씨 아버지는 아들과 손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ㄱ씨 아버지는 수년 전 심장 스탠트 시술을 받았으나 일상 생활에는 문제가 없는 상태였다.
귀국 후 장례를 마친 ㄱ씨는 5일 <한겨레>에 “여행사로부터 안전배려의무 고지를 받지 못했다”며 “여행사로부터 사과를 받고 싶고, 더이상 이런 식으로는 여행상품을 판매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ㄱ씨는 “외교부도 겨울철 일본 온천여행에서 급격한 온도 변화로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등 ‘히트쇼크’로 인한 사고 주의 안내를 해오고 있는데, 우리는 현장에서 어떠한 안내도 받지 못했다. 여행자 보험에 단체로 가입해 있다고 하지만, 보상 기준도 약하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ㄱ씨 가족이 여행사에 지불한 5인 여행비는 총 699만5천원이었다.
상품을 판매한 ㅇ여행사는 “책임을 다했다”고 밝혔다. 여행 출발 한 달 전 계약서 등을 이메일로 보내며 ‘여행안전수칙’을 안내했다고 했다. 또 사고 발생 이후 매뉴얼에 따라 현지 가이드·여행사와 연계된 현지법인 등이 병원 인계와 경찰 조사 등을 도왔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10만2천엔·한화 97만1천원)도 여행사가 부담했다고 밝혔다.
이 여행사가 ㄱ씨에게 보냈다는 수칙 안내문 중 ‘유의사항’을 보면, ‘온천 등 유무료 시설 이용 시 안전 수칙을 준수하고 술이나 약물 섭취 후 이용을 금한다’, ‘복통 등 식중독 의심 증세 및 기타 질병, 사고 발생 시 가이드에게 알려주시기 바란다’, ‘자유일정 및 개별 시간에는 가이드가 동행하지 않으므로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사고에 대해서는 본인이 책임져야 함을 숙지하시기 바란다’ 등이 담겨 있다. ㅇ여행사 법무팀은 “해당 상품은 3월 출발분까지 판매 중”이라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기존 판례를 근거로, 여행사의 안전배려의무 위반 여부를 둘러싼 민사소송 때는 여행사의 과실 및 과실로 인한 사고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여행사가 의무를 다하지 않았음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추가로 책임제한(불법행위로 인하여 피해자가 입은 손해의 일부를 감액하여 배상) 가능성 대목도 살펴야 한다. 대법원 판례를 보면, 안전배려의무 위반을 이유로 여행사에 손해배상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여행사가 사고 발생을 예견했거나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한 사고 위험을 미리 제거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다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2019년 5월 서울중앙지법 제15민사부는 ㄴ씨 가족이 여행사와 손해보험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원고 가족들은 이집트 가족여행을 떠났다가 가족 가운데 한명이 숨진 이 사건을 두고 “설사 증세 등을 보이는 망인이 치료받을 기회를 얻지 못해 기생충 감염으로 숨졌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는데, 재판부는 “설사는 자연 호전될 수 있는 질병으로 보이고, 지사제를 먹인 점 등을 근거로 여행사의 과실이 있다거나 과실과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반면, 2020년 5월 서울중앙지법 제27민사부는 태국 푸켓으로 여행을 간 ㄷ씨 가족 중 한 명이 스노쿨링을 하다 몸에 이상 증세를 느껴 병원 이송 뒤 신부전으로 사망한 사건에 대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사망과 여행사 과실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해 원고 승소 판결했다. 피해자 등은 현지에서 가이드로부터 관련 설명을 들었지만 추상적인 내용만 기재돼 있을 뿐 구체적인 위험성이나 관련 수칙이 기재돼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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