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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업·재계

거스를 수 없다던 ESG, 슬그머니 투자 줄이는 까닭은 [뉴스AS]

등록 2022-06-22 13:32수정 2022-06-23 02:49

최근 ESG시장 자금 유입 줄고 유출
높은 금리·낮은 수익률·전쟁 여파 등
모호한 ESG 평가 기준도 지적
반면 친환경 가속화·투자 확대 전망도
“단기 조정 중…장기적으로 성장 전망”
지난 달 1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경총 제1차 ESG 경영위원회에서 손경식 회장(앞줄 오른쪽서 네번째)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달 1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경총 제1차 ESG 경영위원회에서 손경식 회장(앞줄 오른쪽서 네번째)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산업계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단어는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지배구조)’였다. 에스케이(SK)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코스피200 기업 중 96개(48%)가 ‘이에스지위원회’를 신설했다. 각 기업 이에스지위원회 활동 중 유의미한 것으로 평가받은 것은 149건으로 전체 이사회 안건의 2.4%에 불과해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기업들이 이에스지를 주요 과제로 꼽아 관심을 갖고 행동에 나선 건 분명하다.

올해 들어 이런 흐름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이에스지 활성화 목적의 투자 자금이 눈에 띄게 마르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변화 흐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빠르게 높아지는 금리와 낮은 이에스지 투자 수익률 및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이에스지 투자금 유출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이미 ‘대세’가 된 이에스지 투자 흐름이 꺾이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에스지는 환경(Environmental Responsibility)·사회책임(Social Responsibility)·기업지배구조(Governance)를 추구하는 경영을 말한다. 투자자들이 회사의 지속가능 능력을 평가해 투자 여부를 결정하기 시작하면서, 이에스지가 기업이 추구해야 할 필수 경영 방침으로 꼽히고 있다.

정부와 국제금융센터가 지난 5월 말 내놓은 ‘이에스지 투자(펀드·채권·대출) 둔화 배경 및 전망’ 자료를 보면, 올해 1분기 전 세계 이에스지 펀드 유입액은 750억달러(97조원)로, 지난해 4분기 1425억달러(184조원)에 견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특히 1분기 마지막 달인 3월 유입액은 150억달러로, 2020년 3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5월 이에스지 상장지수펀드(ESG ETF) 역시 순유출로 돌아섰다. 2020년 초 이후 처음이다.

이에스지 투자 둔화 배경으로는 수익률 하락이 우선 꼽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방산 업종 주가가 상승하고, 금리 상승에 취약한 첨단기술 업종 주가가 약세를 보이며, 이에스지 투자 자산의 수익률이 떨어졌다. 특히 이에스지 채권 발행의 34%를 차지해온 유럽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을 받아 타격이 컸다.

친환경 에너지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점도 이에스지 투자 수익률에 영향을 미쳤다. ‘탈원전·탈석탄’을 앞세우며 유럽 에너지 전환 흐름의 선봉에 섰던 독일이 19일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감축에 대응하기 위해 폐쇄했던 석탄발전소 재가동을 허용하는 법안을 마련하는 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각국의 에너지 정책 예측이 어려워진 점도, 부정적인 신호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스지 투자에 대한 평가 기준이 모호한 것도 걸림돌로 꼽힌다. 그동안 환경과 탄소 배출 저감이 강조되는 과정에서 사회·지배구조 요소는 상대적으로 소외됐고, 기업이 평가기관을 불신하는 등의 문제도 있었다. 지난해 5월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차량 탄소 배출 감시를 소홀히 하고, 공장 내 인종차별을 조장했다는 이유로 에스엔피(S&P) 500 이에스지 지수에서 제외된 게 대표적인 사례다.

한편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유럽 각국의 친환경 전환을 가속화하는 등 이에스지 투자를 활성화시킬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에스케이증권 자산전략팀은 지난 17일 내놓은 리포트에서 핀란드 독립연구기관 에너지·청정공기연구센터(CREA) 등의 연구결과를 근거로 “에너지 가격 폭등과 공급망 대란이 장기적으로는 유럽연합 국가들의 화석연료 의존을 줄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럽연합 국가들이 2030년 화석연료 발전량 목표치를 기존 867테라와트시(TWh)에서 595테라와트시로 31% 줄였고,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19년 기준 55%에서 63%까지 늘릴 계획을 발표한 것이 중요한 근거다. 최근 유럽연합이 2035년부터 내연기관 차량 판매 금지 법안을 통과시켜 27개 회원국의 전기·수소차 전환이 더 빨라질 수밖에 없게 됐다는 점도 들었다. 지난달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리파워이유(REPowerEU)’를 통해 재생에너지 사용에 대한 목표치를 높이고 투자 강화 신호를 준 점도 고려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이에스지 투자가 둔화할 수 있지만, 소비자들의 높아진 인식 수준을 고려할 때 장기적으로는 이에스지 투자 수요가 늘 것으로 전망한다. 안영진 에스케이증권 자산전략팀 이코노미스트는 “당장은 현실과 타협이 불가피할 수도 있지만, 이에스지 투자가 확대되는 방향성은 이어질 게 분명해 보인다”며 “화석연료 증산을 요구하는 쪽에서는 규제 완화를 바라지만, 이는 당장의 에너지 문제를 풀 수 있는 길이 화석연료이기 때문이고, 실제로 추구하는 바는 친환경”이라고 짚었다. 은기환 한화그린히어로펀드 책임운용역은 “지금은 이에스지 시장 형성의 초기 단계라 당분간 기준 표준화 등 조정 움직임은 불가피할 수 있다”며 “그러나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시장은 꾸준히 확대될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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