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20일 경기 평택에 있는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설명을 듣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삼성과 에스케이(SK) 등 재벌 그룹들이 지난달 수백조원의 투자 계획을 밝힌 배경에 윤석열 정부와 조율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윤석열 정부가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며 ‘민간 주도 성장’을 강조한 것과 어울리지 않는 행보란 지적이 나온다.
21일 대통령실과 재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삼성을 비롯해 주요 그룹과 대통령실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과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규모 투자·고용 계획 발표를 조율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겨레>에 “정부 출범 이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 등과 관련해 삼성 쪽과 먼저 조처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오갔고, 이후 관련 논의가 현대차, 에스케이(SK), 한화 등으로 확대됐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새 정부 출범 이후 삼성뿐만 아니라 현대차, 에스케이, 한화 등 반도체, 전기차, 수소차, 6세대(6G) 이동통신, 수소발전 등 관련 사업에 대한 규제 완화를 정부가 얘기하기 전에 투자 계획 등을 먼저 발표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오갔다”며 “팔 비틀기 식으로 강요한 게 아니라 조율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규제 완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차원이었다”고 설명했다.
10대 그룹 관계자는 “대통령실 쪽에서 지방선거 이전에 일부 그룹에 투자 계획 등을 발표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한 것으로 안다”며 “일부 그룹이 투자 계획 발표를 준비하면서 다른 그룹들도 그에 맞춰 투자 계획 등을 준비하고 발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앞서 삼성전자는 5월24일 2026년까지 450조원 투자와 8만명 신규 채용 계획을 밝혔고, 현대차·롯데·한화 등도 수십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내놨다. 이후 에스케이(SK), 엘지(LG), 지에스(GS), 씨제이(CJ) 등도 날짜를 달리해 줄줄이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일부 그룹을 특정해 투자 발표 계획을 조율한 것이 아니라 삼성과 얘기하다 다른 그룹까지 확대됐다”며 “그렇다보니 발표 계획은 정리가 되지 않아 제각각 발표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삼성 등 투자나 고용 계획 발표가 나오자 만족했지만, 이후 이들이 발표한 계획을 지키는지 확인할 방법에 대해 고민 중”이라며 “삼성 등 일부 그룹은 너무 거창한 계획을 발표해 어떻게 지켜야 할 지 고민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10대 그룹의 다른 관계자는 “애초 일부 그룹만 정부와 논의하다가 다른 그룹도 참여하면서 발표 시점에 대해선 조율이 안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해당 그룹들은 확인하기 어렵다거나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삼성·현대차 쪽은 정부와 조율에 대해 확인이 어렵다는 입장이고, 에스케이·롯데·엘지·한화 등은 조율이 없었다고 부인했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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