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여파로 미국 증시에 상장된 쿠팡 주가가 폭락하면서 국내 주요 전자상거래(이커머스) 기업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마켓컬리를 비롯해 에스에스지(SSG)닷컴, 11번가 등 올해 하반기부터 줄줄이 국내에서 기업공개(IPO)를 앞둔 업체들에게 쿠팡 주가 추이는 흥행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어서다.
쿠팡은 5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증시에서 전날보다 10.32% 내린 11.9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3월 상장 첫날 종가인 49.25달러와 비교해 4분의 1수준이다. 코로나19 최대 수혜주였던 아마존 등 전자상거래 기업들도 엔데믹 이후 재평가되며 거품이 빠지고 있다. 오프라인 소비 확대로 실적 내림세가 지속할 수 있다는 전망으로 아마존닷컴 주가 역시 5일 7.56% 떨어진 2328.14달러로 2020년 6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11일 예정된 쿠팡의 분기 실적 발표가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쿠팡은 지난해 연간 매출 22조2256억원에 영업적자 1조8039억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 매출과 최대 적자를 냈다. 시장과 업계에선 쿠팡이 강점을 보이는 상품 유통 부문에서라도 실적 개선이 이뤄져야 지속 가능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기업공개를 앞둔 다른 이커머스 업체들도 쿠팡의 분기 실적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가장 속이 타는 기업은 쿠팡과 비슷한 길을 걷는 마켓컬리다. 마켓컬리는 쿠팡의 ‘계획된 적자’ 기조를 따라 물류 투자를 확대하며 올 여름을 목표로 국내 증시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전국적인 물류 시설 투자에 힘입어 지난해 1조5614억원이라는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지만, 영업적자는 2177억원으로 전년(1163억원)보다 크게 늘어난 점도 쿠팡과 닮았다.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기존 물류 시설을 이용해 다른 기업의 배송 서비스를 대행하는 ‘3자 배송 사업’을 확대하는 중이만, 실적 개선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상장에 성공해도 쿠팡처럼 적자폭 확대로 사업 모델의 지속가능성에 의구심이 생긴다면 안정적인 주가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새벽배송 전문 업체인 마켓컬리가 제작한 광고의 한 장면. 마켓컬리 누리집 갈무리
신세계그룹의 온라인 사업 전환의 핵심인 에스에스지닷컴도 쿠팡의 주가 급락을 보며 고민이 커지고 있다. 에스에스지닷컴은 쿠팡과 함께 거래액 기준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 최상위를 다툰다. 이마트 등 오프라인 매장 일부 공간을 배송 센터로 전환하며 온라인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쿠팡의 주가 부진은 이르면 올해 말로 예정된 기업공개 흥행 성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플랫폼상의 거래총액을 토대로 성장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시가총액이 결정되는 이커머스의 특성상, 쿠팡의 시가총액 하향세가 에스에스지닷컴의 기업 가치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에스에스지닷컴은 지난해 인수한 지(G)마켓글로벌(전 이베이)과 통합 유료멤버십 서비스를 선보이며 충성 고객 늘리기 나섰다. 오프라인 대형마트와 에스에스지닷컴의 온라인 장보기 배달 시스템을 연동하고, 자회사로 편입한 지마켓과 옥션, 스타벅스의 브랜드 간 시너지를 끌어내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전략이다.
내년 상장을 목표로 내건 11번가도 2년 연속 영업적자를 낸 터라 쿠팡 주가 급락을 보는 표정이 밝지 않다.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보다 3% 늘어난 5614억원이었지만, 영업적자가 694억원으로 크게 늘어 올해 1분기 실적 개선이 절실하다. 매출 기준 국내 4위 이커머스지만, 직매입 비중이 높은 쿠팡과 달리, 판매자에게 플랫폼을 빌려주고 받는 수수료가 매출 대부분인 오픈마켓의 특성상 사업 확장성이 제한적이란 한계도 있다. 여기에 쿠팡의 실적 하락 여파로 4~5조원으로 평가받던 기업가치가 더 쪼그라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한 이커머스 업체 간부는 “쿠팡이 앞장선 이커머스 간 최저가 경쟁은 매출 증가라는 외형은 넓혔지만, 출혈 경쟁과 적자 폭 확대로 기업 체질을 허약하게 만든 주요 원인”이라며 “첫 상장기업인 쿠팡의 증시 성적에 따라 상장을 앞둔 기업들의 평가도 요동칠 수 있어서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상장 시기를 늦춰야 한다는 내부 목소리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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