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업종이 밀집한 전남 여수시의 국가산업단지. 여수시청 제공
석유화학 제품의 주 원자재인 나프타 가격이 연일 치솟고 있다. 국내에 가장 많은 나프타를 수출하는 러시아가 최근 우크라이나와 갈등을 겪고 있어 나프타의 가격 상승 압박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석유화학 제품에 대한 수요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원자재 가격 고공행진이 이어지자 석유화학사들의 고심이 커지고 있다.
3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사이트 페트로넷을 보면, 지난달 31일 기준 나프타 가격은 배럴당 90.07달러를 기록했다. 2014년 9월30일 이후 처음으로 90달러대로 올라선 것이다. 1년 전에 견줘 상승률은 34.6%다. 나프타 가격은 지난해 8월 잠시 주춤했을 때를 제외하곤, 지난해 연초부터 줄곧 상승했다. 원유를 증류해 추출하는 나프타는 원유 가격에 영향을 받는다. 국제 유가가 강세 흐름을 지속한 탓에 나프타 가격도 따라 올랐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기란 변수도 생겼다. 만약 러시아 침공이 현실화할 경우 미국과 유럽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가 이뤄질 수 있다. 이 경우 달러를 이용한 수출입거래도 중단된다. 우리나라는 러시아로부터 상당량의 나프타를 수입한다. 통계청 국가통계 포털(KOSIS) 등을 보면, 지난 2020년 기준 총 나프타 수입 물량 2억1587만 배럴 가운데 러시아에서만 5221만 배럴을 들여왔다. 약 4분의 1 수준으로, 단일 국가 중 가장 많은 양이다. 러시아 수입이 막히면 나프타 가격 상승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나프타는 석유화학사와 정유사들의 핵심 원자재다. 석유화학사는 나프타를 고온에서 열분해해 에틸렌, 프로필렌 등 석유화학 원료를 생산한다. 정유사는 나프타에 첨가제를 넣어 휘발유로 만들어 판매한다. 최근에는 정유사도 석유화학 제품 생산 공정을 도입하면서 나프타는 업계를 가리지 않고 주된 원자재로 자리매김했다. 그만큼 석유화학 제품에서 나프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증권가에선 석유화학 원료에서 나프타 가격을 뺀 스프레드 지표로 석유화학사들의 수익성을 판단하기도 한다.
나프타 가격 상승에 더해 아시아 지역에서 석유화학 제품에 대한 수요도 줄고 있다. 석유화학사로서는 이중고다.
석유화학사와 정유사들은 제품 수요가 줄면서 지난해말부터 공장 가동률을 줄였다. 급등한 나프타 가격을 상쇄할 수 있을 정도로 수요가 뒷받침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 석유화학사 관계자는 “중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지역의 (석유화학제품) 구매가 여전히 저조하다”고 말했다. 이에 국내 석유화학사들의 올해 전망도 낙관하기 어렵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석유화학 주요 제품의 수요 회복이 있어야 나프타 가격이 강세더라도 (수익 개선을) 기대해볼 수 있다”며 “수요 회복이 더디면 올해 6월까지도 수익 개선이 어렵다”고 말했다.
곽진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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